삶이 더 깊어지려면 취향이 있어야 해요.
이건 음악이든 무엇이든 전부 같아요.
자기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이에요.
#1
‘한철 씨, 이쪽 카페로 오시면 됩니다.’
공연이 끝나고 10일 남짓 지났다. 노년반격의 여운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조금씩 희미해져 가고 있을 무렵, 노년반격의 기획자 중 한 명이었던 이한철 씨를 만났다.
노년반격의 기획은 어떤 의도에서 만들어졌는지, 그가 노년반격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 기자님, 오랜↗만이에↘요~’
특유의 사투리 억양에 사람좋은 미소를 짓고 이한철 씨가 나타났다.
#2
168: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
이한철: 원래 하던 것들 하면서 지냈네요. 5월에 공연 스케줄이 가장 많거든요. 일주일에 서너개씩. 록 페스티벌은 올해 안 가는데 초청받은 다른 공연이 많았어요. 노년반격도 지난 공연이 마무리였지만 그 후에 방송이나 라디오 섭외가 많이 들어왔거든요. TBS ‘배기성의 힘내라 2시’ 방송도 나오고, ‘이주연의 영화음악’에 목장 주인 김원섭 씨하고도 출연하기로 했고. 참가자분들이랑 함께 하는 일정들이 조금 있어요. 이런 중간 역할을 제가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한데, 사람 인연이 ‘시작했다’, ‘끝났다’하고 한 번에 결정되는 게 아니니까 실버그래스도, 바야흐로도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들은 돕고 있어요.
168: 끝은 아니겠지만 공연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뛴지 벌써 5개월 가까이 흘렀다.
이한철: 사실, ‘이번에는 어떻게 공연을 해볼까’하고 작년 11월부터 고민을 했어요. 프로젝트를 끝낸 것에 대해 후련한 마음이 들다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분들과 이제 함께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많이 아쉽더라고요. 싱어송라이터 이한철로서의 역할로 제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도 하고 있고 이제 시작한 일을 일단락 지어야할 때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서운한 마음이 크네요.
168: 노년반격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이한철: 이번에도 작년 ‘나우프로젝트 시즌 1’처럼 장애인 분들과 기획을 이루어야 할지, 아니면 소통이 필요한 다른 대상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한국 에자이의 서정주 부장님이 우리마포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시던 터라, 인연이 닿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시니어 뮤지션들과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어요.
168: 이한철 씨는 노년반격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셨는지.
이한철: 역할에 굳이 구분을 두자면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분명한 구분이 없을 정도였어요. 각자 손에 잡히는 일을 먼저 하는 자유분방한 시스템이었거든요. 체계가 덜잡힌 구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곡을 만든다던지, 소리와 관련된 일들에 주로 관여했어요.
168: 평소 소외계층 지원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이한철: 이런 일을 하게 된 극적인 계기가 있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저는 음악을 시작할 때, 히트곡을 만든다던가, 트렌디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러다 한 해 두 해 지나다보니 음악을 한다는 게, 음악 안에서만 답이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있는 환경이 나에게 영향을 주고 내 음악에 영향을 드는 것처럼 나 역시 환경에 영향을 주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주 사소한 고백>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서울역 근처에 ‘청소년 폭력 예방 재단(청예단)’이라는 단체가 있는데, 거기에 있는 학생들과 만든 노래예요. 이 노래를 만들 때 고무되었던 게 상당히 컸어요. 단순히 아이들에게 이 노래를 선물해 주어야겠다는 차원을 넘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표들로써의 음악 외의 감동을 줄 수가 있구나 싶더라고요. 그런 것의 연장선상으로 다양한 사람과 노래 만들기 워크샵을 통해 서로 알아가는 경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68: 나우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피스앤 그린 보트라는 일본의 환경재단이 있어요. 크루즈를 띄워서 그 위에서 환경이나 평화에 대한 테마로 공부하고 강의하고 놀면서 열흘 정도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행사 뒷풀이에 참석했는데, 동시통역하는 분들이 여러 곳에 퍼져 있느라고 제 공연을 하나도 못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크루즈 복도에서 그분들을 위한 작은 공연을 했어요. 사람이 점점 몰려드는데, 그 자리에서 작곡을 해서 노래를 불렀어요. 가사는 집단 작사처럼, 거기 모인 모두가 같이 부르는대로 만들고. 그때 자리에 서정주 부장님이 계셨다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시고 부장님도 ‘아, 이렇게 해서 노래를 함께 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겠구나’하고 느끼셨나봐요. 이후에 연락을 주셔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에게는 청예단에서의 경험이, 부장님에게는 선상 공연에서의 경험이 많이 작용한 듯해요.
168: 노년반격을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는지.
이한철: 실버그래스하고 처음 곡 작업을 시작할 때가 생각나요. 첫 번째 워크숍 때 노래를 바로 들려줬어요. 사실 오디션 보고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곡의 멜로디를 바로 만들어뒀거든요. 경연 때 실버그래스를 선택하고 나서 곡에 대한 고민을 하다 멘토를 맡은 컨트리공방 장현호 씨한테 물어보게 되었는데, 저한테 블루그래스 노래 샘플을 보내주더라고요. 그거 듣고 바로 집에 가면서 노래를 바로 썼죠. 여기 녹음한 것도 있어요(웃음). 그리고 첫 만남 때 들려드렸는데, 다들 너무 마음에 들어하셨어요. 국내에서는 블루그래스 음악을 하는 분들이 많진 않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걸로 아는데, 번안곡이 많지 창작곡은 많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고맙다며…. 가사를 쓰시는 분도 다음날 바로 써서 올려주시고. 대단한 열정이라고 느꼈고, 그런 점을 보고 저도 많이 배웠죠. ‘이런 곡을 만드는 게 나한테는 익숙할지라도 이 분들에게는 굉장한 역사적 의미가 있구나’ 하면서.
168: 경연하니까 생각나는데, 원래는 두 팀을 선택한다고 했는데 목장주인 김원섭 씨를 실버그래스 팀에 합류시켜서 결과적으로는 세 팀을 뽑게 된 셈이었다.
이한철: 점수가 실버그래스-바야흐로-목장주인 순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김원섭 씨가 공연하는 모습이 아주 즐겁게 보여서 좋았는데, 아쉽더라고요. 경연의 순위를 들진 못했지만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니까 조심스럽게 같이 해보시는 게 어떻냐고 김원섭 씨, 실버그래스에 이야기했어요. 아는 분들이었음에도 따로 나온 이유는 있었겠지만, 같이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다들 흔쾌히 좋다고 하셔서 팀이 이루어졌죠. 다행히 원래 서로 아는 분들이기도 하셨고.
168: 노년반격을 진행하며 참가자들을 어떤 기준에서 선발했나.
이한철: 바라는 점이 있다면, 노년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음악이 굉장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리는 것이었어요. 물론, 여기서의 음악은, 노래방에서 노래를 잘 부른다는 그런 음악을 넘어서, ‘어떤 음악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취향이에요.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드는 것을 말하는 건데, 노래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 수 있다면 더 재미있고 즐거움이 오래갈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실버그래스’는 블루그래스라는 분명한 취향을 가지고 있어요. 컨트리 음악, 컨트리 중에서도 블루그래스니까. ‘바야흐로’는 싱어송라이터에요. 이 모습을 다른 시니어들이 보고, ‘단순히 노래를 잘한다’ 이런 개념을 넘어서 ‘나도 노래를 만들고 싶다. 70년대 록음악, 50년대식 재즈를 하고 싶다’는 식의 구체적 목표를 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모습을 제안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그 두 팀이 의미가 컸고 많은 점수를 줬어요.
168: 여담이지만 ‘바야흐로’의 김철모 씨의 인생 이야기는 노년반격 프로젝트의 주제와 상당히 유사하다. 젊었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대기업 정년퇴직 후 다시 시작하게 된 음악이야기라.
이한철: 부가적인 요소이지만 그런 점이 있었어요. 다만, 그런 점 때문에 일차원적인 깔맞춤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취지의 프로젝트니까 이런 가사가 나오는 것 같은, 깔맞춤의 느낌. 사실 다른 주제의 가사를 붙였어도 좋았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점들을 떠나서 그 가사 자체만으로도 완성도가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168: 실버그래스와 달리 바야흐로는 자작곡이 이미 있었다. 편곡할 때 어떤 점들을 신경썼나.
이한철: ‘바야흐로’와는 선곡 단계부터 시작했어요. 곡을 원래 많이 써두셔서, 10곡 정도를 반복해서 들어봤죠. 김철모 선생님은 아주 청년 같으신데, 사람이 나이 먹는 걸 거스를 수는 없지만 음악 안에서 청년 같은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는 걸 김철모 씨를 보며 느껴요. ‘무스’라는 단어가 가사에 있는데, 요즘 쓰는 트렌디한 말은 아니니까 개인적으로는 바꾸고 싶었어요. 프로듀서가 관여하는 범위가 전부 다른데, 의상부터 곡 전체에 관여할 수 있고, 아니면 편곡까지만 딱 관여를 할 수가 있어요. 요즘 트렌드는 무스가 아니라 왁스니까, 조언을 드릴까 하다가, 그 단어도 그분의 감성에서 나온 단어니까 존중하기로 해서 바꾸지 않았어요.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기도 해요. 옛날에는 프로듀서가 전권을 가진 적도 있었어요. ‘이런게 먹혀, 후렴구 다시 써와’ 이런 식으로. 이렇게 권위적인 프로듀서와도 작업을 한 적이 있어서 뮤지션의 생각을 많이 존중해줘야겠다 싶었어요. 어쨌든 뮤지션의 작품이니까. 작은 부분을 가지고도 정말 많이 이야기했어요. 여러 가지 편곡 버전을 보내서 선택하시게 하기도 하고.
168: 프로젝트 진행 중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는지.
이한철: 제 앨범작업 진행이 더디다보니까 그런 점이 힘들었어요. 1, 2월에는 노년반격이 진행되고 있지만 내 몸이 바빴던 시기는 아니었는데, 오디션이 시작되면서 달라지더라고요. 오디션, 프로필촬영, 녹음, 워크숍, 뮤직비디오 등등. 사실은 1, 2월부터 여름앨범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노년반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앨범 작업이 전면중단 되었어요.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었으니까. 다만 ‘앨범도 빨리 진행해야하는데’하고 진행을 못했던 점이 힘들었어요.
168: 앨범 작업이 지금은 끝났나?
이한철: 이번에 남녀 듀엣이 있는데, 제자인 안예은 양과 함께에요. 그분 노래는 4월 말에 미리 받고, 앨범작업은 노년반격 끝나자마자 시작해서 완성했죠.
168: 기대 많이 하겠다.
이한철: 하지마세요. (웃음) 우선 싱글 내고 6월쯤에 대여섯 곡 들어있는 EP 정도가 나올 것 같아요. 작업실도 옮기고, 노년반격도 있고, 솔로앨범 생각도 해야 하고, 봄이라 공연도 많이 생기고. 4월엔 정말 바빴네요. 그래도 5월 4일 노년반격이 일단락되니 여유가 생겼어요.
168: 이한철의 ‘이 나이쯤에’를 묻고 싶다. 55세는 아직 한창이니 너무 이르고, 70세쯤에는 뭘 하고 있을지.
이한철: 계속 제가 만든 노래를 발표하고 싶어요. 그런 노래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건강이 유지되어야 할 거고, 노래하고 공연할 정도의 에너지도 있어야 할 거고. 그나이까지 앨범 내면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요즘도 음반시장이 노래 자체만 좋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잖아요. 미디어, 마케팅이나 사회적 계기 등이 맞물려야 인정받는데, 그렇게 모두 인정받지는 못할 수도 있어도 나쁘지 않은 노래라면 계속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노래하고 공연하는 70세….
168: 어릴 적부터 꿈이 음악이었나?
이한철: 청소년기에 기타치고, 음악을 많이 듣긴 했는데 막연한 꿈이었고 진짜?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요즘이야 노트북 하나만 있어도 음악을 할 수 있잖아요. 심지어 발매도 할 수 있는데 그때는 아니었으니까. 레코드 회사나 기획사한테 발탁이 되어야 하고, 레코드 CD, 판을 낼 수 있는 다른 여건이 없었어요. 주변에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지방에 살고 있었고. 그래서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는 생각 안했어요. 94년에 대학가요제 나가서 대상을 탔는데, 그때 대학가요제면 지금으로 치면 슈퍼스타K 정도 되니까, 음반기획사랑 손쉽게 계약할 수 있었어요. 그길로 짐싸들고 서울 올라가고. (웃음)
168: 노년반격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한철: 삶이 더 깊어지려면 취향이 있어야 해요. 이건 음악이든 무엇이든 전부 같아요. 자기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이에요. 음악에서도 자신의 구체적인 취향을 가지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시니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이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었습니다.
꿈 없는 사회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 되고 있는데,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간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사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168: 필자 역시 밴드를 할 당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한철: 음악 좋다는 건 알지만 음악을 한다는 걸 쉽게 인정하지는 않아요. 인정받으려면 성과가 있어야 하니까. 항상 보면 유재하 음악경연이나 다른 대회들에 나온 참가자들이 입상하고 나서 가장 기뻐한 부분이, 이제 부모님이나 주변에 말하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부모님 역시 다른 주위분들에게 ‘우리 아들 음악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오늘 아침에 앨리엇 스미스에 대한 썬댄스 채널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왔어요. 앨리엇 스미스가 성공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을 때 한 인터뷰가 나오더라고요. ‘이제 우리 엄마가 아들 뭐하는지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다’라고 하던데.
제가 대학교 4학년에 대학가요제 수상을 했는데, 3학년 넘어가면서 부터는 부모님이 엄청 걱정하셨어요. 레코드 가게나 기타교습소만 보면 들어가서 이런 거 내려면 얼마 드는지 물어보고 다니실 정도였고. (웃음)
168: 꿈 없는 사회 속에서 청춘들이나 꿈을 잃어가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한철: 꿈에 성큼 다가가면 좋겠지만, 너무 빨리 가까워지고 위치가 주어져도 혼란스럽고 힘들어요. 작은 보폭이라도 조금씩 꿈에 가까워지는 노력을 해가면 좋을 것 같아요. 음악만 해도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하고 생각이 많아질수록 곡을 발표하는 게 힘들어지곤 해요. 그래도 곡을 꾸준히 만들고 작은 공연을 하며 꿈에 대한 것을 하나씩 꾸준히 이루어 나가다보면 어느새 꿈에 가까워져있을 거예요. 다들 알지만 그게 어렵기 때문에 실천하지 못하는 거지만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세 팀이 연합해 공연을 했는데 관객이 밴드 멤버 수보다 적더라고요. 관객수가 적다는 것에 위축될 순 있지만, 나름 그 안에서 재미있는 요소를 찾아보면 즐거울 수 있어요. 첫 걸음에 실망해서 ‘관객이 적다. 포기하자’가 아니라, 관객이 적은 것에 익숙해지고 계속 하다보면 점점 일이 풀려서 관객이 늘어나지 않을까 해요.
사실 고민은 나이나 경력과 관계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요. 다만, 나아가는 발걸음만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뿐...
168: 공연 끝나고 서정주 부장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철 씨가 벌써 다음 기획을 짜고 있다고 하더라.
이한철: 이미 본인도 찾아봤더라고요. (웃음) 음원 발매를 하면 작게나마 수익이 생길 건데 그걸 어떻게 할 거냐는 말이 나왔어요. 그냥 맥주 먹고 끝낼 건지 아니면 의미 있는 곳에 쓸 건지 고민을 해야하는 시점이었거든요. 음악을 하는 시니어면 경제적으로 부유하다는 시선이 있어요. 음악을 포함한,예술에 접근이 어려운 시니어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폐지 줍는 노인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생각했는데, 일이 고된 것도 있지만 사고가 굉장히 많거든요. 낙상이나 교통사고 등. 그래서 야광띠가 둘러진 리어카를 지원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소외계층을 위해 일하는 의미 있는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이야기했죠. (웃음)
#3
길다면 긴 4개월, 노년반격의 대장정이 끝났다.
꿈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뤄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뒤엉킨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한 와중에, 머릿속에는 그저 한마디 말이 어른거릴 뿐이다.
“설레는 일을 만드세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팩장수가 돼서 팩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 다른 일을 만들어야겠다.
오랫동안 말이 없던 단톡방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합주나 합시다, 여러분.’
<본 기사는 다음카카오 스토리 펀딩에 연재되었던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님을, 노년반격'의 후기 기사입니다.>
[노년반격 1회 - '슈스케? 아니, 노스케' 노년반격 경연현장]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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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조용찬(lifeinagony@onair168.com)
전민제(applause@onair168.com)
취재보조 : 신현지(epttlovinhs@onair168.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