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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고 있어요.

친구들이랑 ‘진혼’이랑 ‘이미 슬픈 사랑’ 부르면서 취한 거.

인혁이 형한테 취한다,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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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15년 3월 발행된 '문화지 168 봄 호 - 첫 번째 봄'에 실린 기사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168 : 요새 좋은 소식이 많은데 4월에 길한 소식이 있다고 하던데?

전 :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다. 드디어 아빠가 되는데, 아기가 나오지 않아 실감은 아니지만 인생에 있어 음악 외에 가장 큰일인 만큼 기분이 좋으면서도 떨린다.

168 : 공주님인가? 아들인가?

전 : 아들이다.

168 : 축하한다. 이름을 정했는가?

전 : 그렇다. 이름은 미리 정해놨는데 특이하다. 외자로 ‘설’ 자를 써서 ‘전설’이다.

168 : 이름이 특이하다

전 : 베풀 설(設)을 썼다. 인자하게 베푸는, 그릇이 큰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지었다.

168 : 외자라면 놀림감이 될 법도 하지만, 부를 때 이름이 예쁘다. 설아. 설아.

전 : 많이 놀릴 수 있는 이름이라 걱정은 된다. 잠의 전설, 지각의 전설, 이런 식으로(웃음). 그런 것만 아니라면…. 잘 되면 정말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168 : 전설의 레전드는 타임머신처럼 과거로 돌아가서,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는 지면이다. 옛날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전인혁 하면 야다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야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전 : 원래 시작은 기타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기타치고 음악 하는 분위기의 학교가 거의 없었다. 실용음악과도 별로 없었고. 그러다 보니 기타 치는 친구가 적었고, 같은 학교 선배가 나를 자연스레 눈여겨 봐두었는데, 어쨌든 졸업을 하고 야다 오디션에 먼저 지원을 했는데 떨어졌다. 그 선배가 오는 길에 내 생각이 나서 ‘기타 치는 사람 뽑는다는데 지원을 해보라’고 이야기해줬고, 반신반의하면서 오디션을 봤는데 그게 야다의 보컬 겸 기타 자리였다. 그래서 19살 때 연습 기간을 마치고 <이미 슬픈 사랑> 앨범을 내게 되었다.

 

 

168 : 기타는 언제 시작했나.

전 :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연주를 시작했다. 어려서 기타를 잡았기 때문에 또래들과 평범하게 놀았던 경험은 많지 않았다. 사실 밴드의 기타리스트를 갈망했고, 야다에 기타리스트로 들어왔지만 바람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나를 야다의 보컬로써 받아들이더라. 사람들은 아마 이해를 못할 텐데, 내 음악적 뿌리는 기타였기 때문에 20대 초반에 그렇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168 : 기타리스트가 뿌리라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전 : 내 음악의 큰 뿌리는 기타다. 지금은 다행히 운 좋게 찾아온 기회일까.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 위치이다. 지금도 좋은데 ‘당신의 음악 중에 굳이 하날 선택하라’면 기타를 선택하겠다.

 

 

168 : 야다 활동기에 쟁쟁한 록발라드 가수들이 많았다. 플라워, Y2K, K2 등등. 야다 최고의 라이벌이 있다면.

전 : 그 당시 록 발라드가 유행이었다. 누구 하나가 뛰어나다기보다 춘추 전국 시대 같은 느낌이랄까(웃음). 이쪽에선 누가 있고 저쪽에선 누가 있고. 참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음악 씬은 분야마다 그 범위가 넓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당시엔 ‘록씬’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서 가요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런 음악이 유행하기도 했고. 당시엔 그렇게 동류의 음악을 하는 분들로 Y2K, 얀. 김경호, 김정민 선배 등이 있었다. 어쨌든…. 사실 라이벌은 모르겠다(웃음). 가요 프로그램을 같이 나가게 되면 출연자 리스트를 보고 ‘오늘 특별히 노래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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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 팬들 사이에선 플라워와의 라이벌 구도가 유명했다. 플라워와는 나중에 멤버로 영입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친분이 있는 거로 아는데, 두 팀 멤버들 간에도 그러한 라이벌 구도에 대한 인식이 있었는지.

전 : 친하게 지낸다. 곧 있을 플라워 공연에 게스트로 가기도 하고. 사실 그때 당시에 플라워는…. 형들도 알 거다. 야다 한테는 안됐다(웃음). 농담 삼아 옥신각신하곤 한다.

 

 

168 : 플라워는 어떻게 만났나.

전 : <이미 슬픈 사랑> 발표 후 <진혼>을 발표했는데 그때 프로듀서가 플라워의 리더 고성진 씨였다. 그 형님을 갈게 되면서 플라워 멤버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플라워 앨범 작업할 때 레코딩 세션을 내가 담당해서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이건데’ 하면서 기타에 대한 음악적 갈망이 점점 커졌고, 야다 해체 이후 플라워 기타리스트로 들어가게 되었다.

 

 

168 : 지금에야 플라워에 영입된 걸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팬들은 충격이 컸다. 요즘으로 치면 크라잉넛 한경록 씨가 노브레인에 들어갔다고 생각해야 할까.

전 : 미안한 마음이 컸다. 나의 욕망을 채운 것이니까. 팬들 입장에선 내 목소리, 그 음반을 갖고 싶어 했고 그것 때문에 팬이 되었는데, 서운했을 거다. 그래도 지금까지 기다려 주고 있는 팬들이 많다. 운영진들도 아직 묵묵히 기다려주고 있는데 요새 ‘노래를 하겠다’고 발표하니 살맛 난다고 하더라. 아이 둘 낳고 나니까 그제야 노래를 하느냐고 하던데(웃음).

 

 

168 : 주변 지인들 반응은 어땠나.

전 : 지인 중엔 슬퍼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나를 평소에 굉장해 아끼던 분이 정말 슬프셨는지 내가 기타 치는 모습을 보고 공연 중에 눈물을 훔치기도 하더라. 그땐 ‘사람들은 왜 내가 선택한 길을 아쉬워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게 나에 대한 비존중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야다 활동도 즐거웠지만 전국투어 하면서 관객들과 만나고, 기타리스트로서 플라워 곡도 쓰고 했던 그때가 행복했다. 그러다가 군대에 가면서 플라워도 자연스럽게 해체하게 되었다.

 

 

168 : 야다는 어떻게 해체하게 되었나.

전 : 그 당시에 밴드 음악이 하향세를 겪기 시작했고 멤버들 군대 문제도 컸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마침 소속사와 계약 기간도 끝나는 시기여서 각자의 길을 가기로 멤버들과 결론을 내렸다. 지금 뮤지컬을 하는 김다현은 원래 연기자가 꿈이어서 자기 길을 떠났고 나머지 멤버들도 각자 자기 삶을 살고 있다. 어쩌다 보니 음악은 나 혼자 하고 있다.

 

 

168 : 슬램덩크 보셨나. 전인혁의 영광의 시기는 언젠가.

전 : 의미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다를 텐데…. 기억에 남는 공연들이 있다. <이미 슬픈 사랑>이 히트를 하고 <진혼>이 나올 무렵이었다. 연대 아카라카 축제는 사람도 많이 오고, 나름의 자부심이 있는 축제였다. 핑클 같은 당대 최고의 그룹도 아카라카에서 원하지 않으면 못 갔으니. 본인들이 인정한 가수를 뽑는다는 게 아카라카의 생각이었다. 그때 야다가 아카라카에 초청을 받아서 <이미 슬픈 사랑>을 불렀는데, 수많은 관객이 <이미 슬픈 사랑>을 따라 불러서 아예 마이크를 놓았던 기억이 있다. 시끄러워서 놓은 게 아니라, 순간을 느끼고 싶었다. 이 몇 분이 내 인생에서 단 한 번 밖에 없을 것 같은 순간 같아서. 그래서 내 마음 속, 기억 속에 담아두자는 생각으로 마이크를 내려두고 객석을 바라봤다. 그 때 의미를 두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음악은 <이미 슬픈 사랑>이 아닌데, 언젠가 내 음악을 하면서 다시 사람들과 이렇게 소통하는 순간을 만들겠다고 마음속으로 꿈꾸었다.

 

 

168 : 그렇다면 전인혁이 하고 싶은 음악은 어떤 것인지.

전 :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음악뿐만 아니라, 본질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내가 무언가 시작을 했을 때 ‘왜 시작을 하게 되었는가’를 떠올려본다. 힘들 때, 흔들릴 때 이런 생각을 하면 답이 나온다. 예를 들어 ‘내가 왜 기타를 쳤지?’라는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 포스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록스타들의 아우라를 보고 ‘언젠가 저 사람들처럼 내 밴드와 함께 음악을 해보리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였지, 누구의 세션을 하려고 시작하려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본질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내 마음, 나의 정신에 대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난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려면 어쨌건 언젠가 나와야 할 곳이었으니까.

 

 

168 : 야다의 스타일은 인혁 씨가 하고 싶었던 음악과 차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전 : 사실 나는 록 음악을 좋아했고 연주 스타일도 그렇지만 의외로 팝 성향도 강하다. 사람들은 기억할 때 나를 ‘샤우팅’으로 기억하곤 하는데, 사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샤우팅이 정말 힘들었다(웃음). 작곡가 형들에게 이런 이야기도 했다. ‘이거 부를 수 있긴 한데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그때 작곡가 형님이 22살의 나에게 말했다. ‘한 번이 힘들지 레코딩은 영원히 기록된다. 완성만 하면 이렇게 노래 부르는 사람으로 영원히 남을 수 있다. 그러니 레코딩을 하자’. 그 덕분에 아주…. 쉽지 않았다(웃음). 추구하는 음악은, 록, 밴드 베이스에 팝 성향의 음악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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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 전인혁에 관한 기사에는 온통 샤우팅, 고음, 샤우팅, 고음만 써있다.

전 : 그건 앞으로 영원히 갖고 가야 될 것 같다(웃음). 이런 걸 보면 음악적 성향이 나오는데, 어렸을 때 가장 인상 깊게 본 포스터가 있다. 기타, 드럼, 베이스 나뉘어서 악보는 바닥에 펴놓고 생각하는 대로 악보 4칸에 찍어서 연습하는 거! 그게 그렇게 멋있었다. 그냥 음악 하는 사람들. 그렇게 음반을 발표해서, 말 그대로 흔적을 남기고 싶다.

 

 

168 : 야다 재결합 가능성은 전혀 없나. 이재문 씨는 지난 인터뷰 때 민진홍 씨는 모바일 회사로, 자신은 PD로 가고 있으니 다른 멤버들은 몰라도 둘은 생업 때문에 힘들지 않겠냐는 얘길 하더라.

전 : 아, 그랬나? 하긴 나도 M.O.D라는 밴드를 하고 있어서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나를 제외하고 한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멤버들이 원년 멤버가 아니면 안된다고 한다면…. 힘들지 않을까. 이제 M.O.D에 뼈를 묻는 거지. M.O.D 하면서 사람들이 원하면 <이미 슬픈 사랑>을 불러야 하는 운명…. 이건 정말 영원하다(웃음).

 

 

168 : 밴드 M.O.D는 어떤 팀인가.

전 : M.O.D는 베이스 김재홍, 드럼에 윤태린. 태린이는 꽃미남에 나이도 어리다(웃음). 내가 주로 곡을 쓰고 재홍이도 곡 쓰면서 같이 연주한다. 이번 불후의 명곡도 M.O.D랑 같이 연주했다. M.O.D는 아까 말한 대로 나와 같은 꿈을 가진 친구다. 하고 싶은 장르도 같고. 우린 서로를 좋은 뜻으로 ‘마귀’라고 한다. 재홍이는 나를 ‘전마귀’라고 하는데, 작업할 때 섬세하고 빡빡하게 하다는 뜻이다. ‘우리 마귀 선생님’하면서(웃음). 지금 팀에는 서로에 대한 음악적 존중이 깔려 있다. 서로의 포지션을 존중하고 인정하는데, 특히 베이스에 대해서는 존경이 깔려있다. 그게 우리 팀을 끌고 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인간적인 팀이다. 두 친구가 M.O.D에선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멤버들이기도 하고.

 

 

168 : M.O.D 멤버를 꾸릴 때 문제는 없었나.

전 :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음악을 하면서 수익도 창출되어야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다 접어두고 힘들지만 누가 미래를 위해 음악만을 위해 갈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다행히 부합하는 멤버를 정말 운 좋게도 만났는데, 인생에 크게 몇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지 않나. 나는 멤버들을 만난 게 내 인생의 로또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만날 수가 없거든. 30대 중반이 넘었고 음악 하나만 생각하고, 며칠 동안 밤새도록 웃으면서 행복하게 음악할 수 있는 사람들을.

 

 

168 : 드러머는 어떻게 모집하게 되었나. 오디션을 본 건지.

전 : 오디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재홍이와 북 치는 소년을 찾아 나섰는데, 우리가 기준이 높았다. 연주 실력이 아주 높아야 하고, 성격까지 좋아야 하니. 희한하게 연주가 되면 성격이 안 좋고 성격이 좋으면 연주가 조금 아쉽고. 드러머 태린이는 ‘복(福)’이었다. 소개는 아는 지인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자기 학교 출신 음악과인데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내가 쓴 곡 2, 3개를 연습해서 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날 첫 번째 곡을 듣고 결정했다. “아! 네가 욕망의 사나이구나! (웃음)” 첫 4마디만 들어보면 그 사람 공력이 나온다. 그다음부턴 자주 만났다. 만나서 음악은 안 하고 커피 마시고 밥 먹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케이 했다.

 

 

168 : 팀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전 : 팀 이름도 오래 걸렸다.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다 보면 자주 이야기하는 어휘가 있지 않나. 우린 ‘욕망’이란 말을 많이 쓴다. 예를 들어 밥을 먹으러 가는데 밥을 많이 먹으면 나머지 멤버들이 ‘어휴, 욕망이다, 욕망’ 그런다. 그러다가 욕망이 영어로 ‘Desire’니까, 처음에 ‘욕망의 사나이’로 이름을 정했다. 지어놓고 보니 뭔가 70년대 느낌이 나니까 영어로 바꿔서 ‘Man of Desire’, 줄여서 M.O.D로 갔다.

 

 

168 : 다른 안건도 있었나.

전 : 자주 쓰는 어휘 중에 ‘흉악하다’도 있는데, 이런 어휘들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많이 쓰는데, 예를 들어 사운드가 기가 막히게 믹싱이 잘 되었다는 표현이다. 일반 사람들은 좋은 음악을 들으면 ‘예술적이다!’라고 표현 할 텐데, 우리는 ‘흉악하다’고 표현하다. 선배 뮤지션이 음반을 굉장히 잘 뽑아서 ‘역시 선배님!’ 해도, 그걸 보고 ‘이야, 흉악하다’라고 하고. ‘본뜰 흉’이란 한자가 있다. 여기에 즐길 락 해서 음악을 잘 땄단 표현이다. 그래서 ‘흉악하다’라는 뜻으로 팀 이름을 정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어감이 좀…. 그래도 쓰다 보면 매력이 있다. 딱 감기는 표현이지 않나(웃음).

 

 

168 : 전성기의 전인혁과 비견될법한 후배 뮤지션은?

전 : 글쎄. 예전에 버즈 친구들 보면서 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고. 씨엔블루도. 물론 조금 스타일은 다르긴 하지만…. 요샌 두루두루 잘 보고 있다. 요새 여자 가수들이 실력이 좋아 보인다. 분포도로 봤을 때 여자 가수들이 더 잘하는 거 같다. 아쉬운 거도 있지. 범수 형이나 이승철 선배 같은 분들의 밑을 탄탄하게 받쳐줄 사람이 없다. 밴드도 한번 나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음악 밴드가 너무 없다. 밴드 음악도 나와야 되는데.

 

 

168 : 전인혁의 레전드는 누구인가? 국내외 상관없이.

전 : 넥스트다. 故 신해철 선배님의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분의 철학과 고뇌, 생각 모든 게 음악에 담겨 있다. 내가 감히 선배의 음악을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시간을 두고 음악을 자꾸 듣다 보면 이 음악의 진정한 의미가 뭔지 알게 되더라. 내가 원하는 음악가 상과 일치한다. 선배님의 음악과 넥스트의 음악이 곧 신해철이다. 정말 귀가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가사도 철학적인데, 넥스트 초기 음악을 들어보면 음악 자체가 프로그레시브 하다. 그런데도 90년대를 열광의 도가니로 수놓았으니. 나에겐 히어로이자 레전드다. 안 좋은 소식을 접했을 때 인간적인 슬픔과 함께, 더는 그의 음악을, 그의 생각을, 지침을 접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다. 마음속에 의지하고 알게 모르게 많이 따라갔다. 김현식, 여행스케치, 전람회, 김건모 선배 음악도 좋아한다.

 

 

168 : 기타리스트는 어떤가.

전 : 신대철 선배를 좋아한다. 기타리스트 평가하는 기준은 모두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테크닉 이상으로 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있느냐를 본다. 신해철 선배만의 분위기와 손끝에서 나오는 톤, 시나위만의 음악 등.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밴드 음악을 못했을 것 같다. 그 음악들이 힘이 되었으니까. 그분들은 날아오는 거 다 맞으면서 음악 하시는 분들인데 후배로서 내가 그분들만큼 못 따라가는 거 같고 죄송스럽고, 존경한다. 블루스 쪽엔 이중산 선생님이나 이치현과 벗님들의 이치현 선생님은 정말 뛰어난 뮤지션이다. 정말 뛰어난 아티스트신데 그런 분들이 조명을 받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168 :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전 : M.O.D 활동이 가장 크다. 곡 계속 작업 중이고 무대도 설 수 있으면 계속 설 것이고 첫 단독공연을 기획 중이다. 방송에 나오면 M.O.D로 계속 활동 할 텐데, 때가 되면 많은 사람이 언젠간 M.O.D의 전인혁으로 다시 기억해주시리라 믿는다. 물론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주변에서 야다의 이름을 쓰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냥 야다는 야다로 남기고 싶다. 야다의 기억... 좋지 않나? 좋은 추억에 혹여 누를 끼칠지도 모르니. 그리고 아기 낳으면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본 기사는 <문화지 168 첫 번째 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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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용찬(lifeinagony@onair168.com)

사진 : 이혜원(hyou78@onair16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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