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아티스트>
노라조
가만, 어디서 말울음 소리 들리지 않으세요?
거친 황야를 내달리는 남자의 뮤지션, 노라조가 나타났다!
이번엔 삼각김밥도 아니고, 슈퍼 히어로도 아니고, 인도음식은 더 더욱 아니다. 대신….
야 야 야 야 생마♬ (생마! 생마!)
생마! 생마! 생마!
j : 공백기가 꽤 길었는데 그간 근황은 어땠나.
노 : <여자사람> 이후로 노래가 없었는데, <슈퍼맨>, <고등어> 등의 가열찬 느낌의 노래를 기준으로 삼는 대중들에겐 공백기가 더욱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여자사람>은 마틸다, 레옹 등의 분장을 하긴 했지만….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조빈(이하 ‘빈’) : 중간에 커피 나온 거 꼭 써달라. 살아있는 인터뷰!(웃음) 재밌는 분장도 하긴 했지만 신나게 달리는 느낌의 곡들은 너무 오랜만이기에 공백이 길게 느껴지실 것이다. 그래서 더 공을 들여 작업을 했는데, 여기서 공을 들였다는 것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첨가했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기존에 팬들이 좋아해주셨던 곡들의 느낌을 계승하면서 새롭고, 사람들이 '역시!’라고 말해줄 수 있는 뭔가를 찾아야 했기에 곡 작업이 많이 힘들었다. 아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더 편했을 것 같기도 하다. 대중들은 노래방에서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지, 직장인들은 어떤 노래를 불러야 스트레스가 풀릴지, 아이들은 어떤 노래를 더 재밌어 할지…. 이런 고민들이 쌓이다보니 시간이 더 걸렸다.
j : 휴식기 동안 출연했던 ‘불후의 명곡’에서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노 : 간헐적으로 출연했다. 6개월마다 한 번 나가서, 흡사 아이슬란드 온천수 터지듯이 공연을 했는데, 다행히 매 주 공연을 하는 게 아니다보니 아이템이 고갈되지 않았다. 1등도 한 번 해봤고….. 이혁군은 솔로로 나와서 1등을 해봤지만 노라조로서 1등한 건 처음이었다.
j : 출연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빈 : 처음에 이혁군이 솔로로 나가서 운 좋게 1등을 했다. 그 다음에 왕중왕전을 하니까 출연해달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번엔 ‘노라조’로써 나와 달라고 부탁받았다. 사실 이런 식의 경합은 내 성향과 맞지 않아서 고사했는데 결국 수락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스트레스의 끝을 경험하게 되었다. 머리를 싸매고 앉아서 편곡부터 컨셉까지 모든 부분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일이 끝났을 때 노력한 일에서 이렇게까지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도 불후의 명곡이 처음이고, 일이 마무리 된 것에서 오는 해탈감과 행복감을 이렇게 크게 느낀 것도 불후의 명곡이 처음이었다. 가슴 떨리고 오묘한 감정이 드는 프로였다.
j : <돌아가는 삼각지>, <머피의 법칙>, <나는 문제없어> 등을 불렀다.
노 : <돌아가는 삼각지>는 괜찮았다. <머피의 법칙>이 좀 힘들었고, <나는 문제없어>에서 절정에 달했는데, 전설이나 다름없는 황규영씨와 같이 하다 보니 굉장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편곡을 우리가 담당했는데, 우리만 생각하면 엽기발랄로 가도 상관없겠지만 황규영씨와 함께 하는 것이다 보니 후배입장에서 누가 될까봐 잘 포장하고 싶었다. 엽기로 포장한다고 잘못 포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노래를 우리 마음대로 해서 함께 공연한다는 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j : 본래의 소속사를 떠나 ‘노라조 프로덕션’이라는 독립 소속사를 차렸다.
노 : 계약기간이 끝나서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는 금전적인 면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을 장래의 방향으로 삼았는데, 전 소속사는 아무래도 챙길 식구가 많다보니 그로인해 서로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속사를 직접 차리는 것이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긴 하지만,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느낌이라도 돈 보다는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재미나게 살고 싶었기에 남들은 전부 말렸던 것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는데, 소속사를 나올 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된다는 전제를 달고 조금씩 이야기를 맞춰왔기에 흔쾌히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j : 지금 하고 있는 프로덕션 일에는 만족하고 있나.
노 : 굉장히 만족한다. 보통 회사를 차리면 금전적인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는, 예전부터 감사했지만 우리가 행사를 할 수 있는 팀이라는 사실이 굉장히 감사하다. 처음에는 ‘날티난다’고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의식이 되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전국 어디든지 가서 사람들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축복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j : 조빈씨는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빈 :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노래 좀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주셔서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쯤에 친구들끼리 밴드를 하게 되었는데,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매일 들어오던 명반들을 우리끼리 연주해보고 싶어서였다. 처음엔 베이스를 맡았는데, 입대를 문선대((※연예병사라는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 사단별로 운영되던 ‘문화선전대’의 줄임말. 노래, 악기, 풍물, 연기 등의 문화 활동으로 개별 부대를 대상으로 한 위문공연 활동을 담당했다.))로 하게 되면서 그때부터 보컬 파트를 담당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밴드를 할 때 보컬을 하지 않았던 것은 따로 보컬을 하고 싶어 하던 친구가 있었기 때문인데, 어차피 즐기기 위한 목적에서 밴드활동을 했던 것이니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노는 분위기이니까. 줄도 4개이다 보니 기타에 비해 치기 쉬워보여서 베이스를 선택한 것인데, 어쨌든 음악은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j : 99년에 팀을 하나 결성했었다고 들었다.
빈 : ‘티지에스’라고 해서 ‘Total Gift Set’, 종합선물세트라는 뜻인데, 노라조와 컨셉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한 명은 문선대 시절 선임, 다른 한 명은 선임의 대학 동기였는데, 처음부터 가수를 하려고 결성한 건 아니었다. 옛날에 ‘가상특종 이프(If)’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방송의 재연배우로 시작했다.
그런데, 문선대 선임의 선임 중에, <빛과 소금>,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식씨 등을 키운 동아기획의 아드님 되는 분이 있었다. 같이 군 생활을 한 건 아니지만 계보 상으로는 위에 있는 선임이었는데, 어쨌든 이분을 찾아가서 무작정 가수를 시켜달라고 조르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웃기지 말라는 반응이 나왔는데, 와서 밥이나 먹고 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왕래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분도 저를 좋게 보셨는지, 결국엔 음반을 만들었는데 그게 ‘티지에스’의 시작이었다. 3,4년 정도 활동을 하고 해체했는데, 문선대 선임은 티지에스 이후 영상 분야 업무를 배우기 시작해서, <슈퍼맨> 이후에 나온 노라조의 모든 뮤직비디오를 담당해주었고, 얼마 전 <야생마>의 뮤직비디오 감독을 맡아주기도 했다. 나머지 한 분은 홍대에서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
j : 이혁씨는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이혁(이하 ‘혁’) : 비슷하다. 친구들이랑 음악하다가 그 친구들보다 더 오래 버텼다. 못버틴 친구들은 일도 하고, 결혼도 했지만 나는 계속 다른 팀으로 옮기면서 음악활동을 지속해왔다.
j : ‘오픈헤드’라는 팀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혁 : 제일 처음 하게 된 밴드였다. 원래 정통 메탈밴드를 하려고 했는데 대중적으로 다가가려고 하다 보니 장르가 약간 바뀌었다. 첫 팀이었던 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해보고 싶은 게 더 있었는데, 안좋은 일도 많았고 원치 않게 팀이 깨지는 바람에 다른 팀을 만들어서 나오게 되었다. 한국에서 밴드 활동을 한다는 것이 많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j : 노라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혁 : 조빈씨가 2인조로 해볼 생각 있냐며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노라조 활동을 하려면 전부터 하고 있던 밴드를 그만두어야 하니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밴드를 하기 전에 인지도를 쌓아야지 나중에 락 밴드 활동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함께 밴드를 하던 친구들도 전부 입대를 하게 되서, 군대 다녀와서 꼭 다시 뭉치자고 결의를 했다(웃음). 이 친구들이 전역하고 나서 “나왔는데 형이 다른 팀하고 있으면 난 어떡해”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런 이야기는 없고 다들 결혼하고 직장에 들어가더라.
j : 음악 활동하면서 가장 희열을 느낄 때가 언제인지.
혁 : 초반에는 무대에 올라갔는데 사람들이 박수만 쳐줘도 희열을 느꼈다. 행사나 방송경험이 적었던 처음에는 어딜 가더라도 긴장이 되고, 날씨가 춥지도 않은데 몸이 덜덜 떨리기도 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공연 할 때, 관객들이 노래의 어느 파트들을 떼창을 하며 따라 불러줄 때 희열을 느꼈다. 경우에 따라 관객들이 떼창을 강하게 불러줄 때면, MR보다 관객들 목소리가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럴 때면 ‘이걸 위해서 지난 8, 9년 간 열심히 앞만 보고 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는데, 이상하게 무대에서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으면 목이 잘 풀린다.
j : 조빈씨는 언제 희열을 느끼는지.
빈 : 지난 3일에 있던 쇼 케이스에서 일종의 희열을 느꼈다. 대외적인 홍보를 따로 한 것도 아니고 SNS에 공지를 했을 뿐인데 신청해주신 분들을 추려야 하는 상황까지 온 것도 짜릿했고, 그분들이 우리의 곡을 알고 함께 즐겨준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그동안 열심히 해온 증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그전에는 콘서트를 해도 뒤에 댄서들을 세우고 전부 MR로만 했는데, 밴드 라이브를 처음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MR을 쓰고 댄서들을 세우는 게 버라이어티 해보일 수는 있지만, 라이브가 주는 폭발적인 사운드와 그때 그때 준비한 곡의 흐름?연주의 기법 등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여지가 없기에, 그런 부분들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래서 콘서트할 때 밴드를 쓰는구나 싶었고, 동시에 사람들이 ‘라이브는 락이야’라고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매일 느껴온 사실들이었지만, 무대에서 그걸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j : 4집의 <Rock Star>나 5집의 <Gaia> 등 앨범에 메탈 곡을 수록하기도 했고, 이외의 곡에서 락을 기반으로한 반주를 도입했다. 메탈의 특성상 주류 음악과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있고, 댄스가수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노라조가 메탈을 시도한다는 것은 그간의 행보와 반하는 것인데 소속사에서는 이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는지.
노 : 당시 사장님 성격이 많이 쿨하셔서 ‘타이틀 곡이 아닌 건 너희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댄스니까 앨범의 흐름에 맞게 수록곡들을 댄스곡으로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는 없었다. 1집 때 댄스곡이 좀 많았는데, ‘한 곡 정도는 너희가 써봐라’라고 해서 썼던 곡이 <사랑가>였다. 그렇게 곡을 만들어서 실었는데, 아무래도 사장님이 듣기에 그리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식으로 처음엔 한 곡을 실었던 것이 나중엔 두 곡, 세 곡 이렇게 점점 늘어가다보니, 나중엔 ‘너희 마음대로 해’라는 식이 되었다. 그래서 사장님께 ‘이번엔 11분짜리 곡을 해보고 싶습니다’하고 말씀 드리게 되었다.
j : 사실, 맨 처음 노라조의 락을 들었을 땐 조금 놀랐다.
노 : 댄스를 통해 ‘엽기’라는 깃발을 내걸고 가는 팀이다 보니 나머지 곡들도 뻔하게 예상되는 곡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마침 우리 둘 다 락을 좋아하다 보니, ‘그럼 우리 락을 해보자’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Rock Star>를 쓰게 되었는데, 락을 한다고는 하지만 락의 사회저항주의를 표출하는 것이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기에, 사운드는 락의 사운드를 가져오되 그 안의 요소들은 노라조스럽게 가자고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사를 보면 ‘락하고 싶었는데 사장이 돈 좀 벌자고 꼬셨다’는 사장님에 대한 디스가 나오기도 하는데, 사장님은 오히려 ‘괜찮으니까 사람들이 좋아해줄만한 것을 해라’고 해주셨다. 이런 기본적인 마인드가 있었기에 우리의 엽기 컨셉이 진화할 수 있었다.
j : 메이저 가수임에도 현실적인 제약이 비교적 적었던 것 같다.
노 : 우리나라에서 락을 하는 사람들은, 락을 통해 수입을 내고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작품성있는 곡을 쓰는 것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총대를 메고 그런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이런 애들도 락을 하는데 우리도 해보자’와 같은 용기를. 또, 우리는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열려있기 때문에, 우리의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예전에 이런 음악이 있었지’라든지, 혹은 다른 팀들이 <Gaia>를 통해 그들의 음악을 펼칠 수 있는 바탕을 깔아주고 싶었다. 사실 <Gaia>도 연주시간이 길뿐 별거 아닌데, 이런 식으로 활동을 하면 그동안 시도를 하지 못하던 비슷한 락 음악을 하는 팀이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또, <Gaia>같은 장르의 노래가 아니라 소프트한 곡을 했던 팀들이라도, 우리 이전에 이런 식으로 바탕을 깔기 위해 활동했던 팀들이 많았기에, 우리는 그저 품앗이를 하듯이 도와서 락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락을 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다.
j : <Gaia>같은 경우 매탈 마니아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노 : 이런 시도에 대해 많이들 좋아해 주셨다. 그렇지만, 스피드메탈의 코드 패턴이 밝고 경쾌한 멜로디를 가진 캐논코드를 주로 사용하는 것이다 보니, ‘조금 식상하다’는 반응이 많이 나왔다. 그런 아쉬움을 보여주신 분들이 많은 반면, ‘이것도 대단한 거다’는 반응을 보여주신 분들도 있었는데, 어쨌든 이제는 한 번 정도 제대로 락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밴드 결성을 할 때 드러머같은 경우엔, 곡의 질주감을 살리기 위해 투 베이스를 밟을 수 있는 드러머를 우선으로 삼아서 뽑기도 했다. 밴드 멤버들을 인디에서 내공을 쌓은 친구들로 꾸려봤는데, 제대로 밴드를 해서 락만 담긴 미니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j : 2년 만에 새로 <야생마>를 발표했다. 곡에 대한 설명 부탁드린다.
노 : <슈퍼맨>, <고등어>, <카레>를 좋아해준 분들이 들었을 때 어색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한창 밴드 곡을 들을 때, 좋아하는 밴드가 몇 년 만에 신보를 발매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CD나 LP를 올리며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던 기억이 있다. ‘첫 곡이 어떨까’하고 틀었는데 내 기대대로 신나는 사운드가 나올 때가 있는 반면, 새로운 시도를 했다면서 내 기대를 무너뜨리는 발라드가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런 느낌이 제일 심했을 때가, 'Helloween'에서 카이 한센이 탈퇴하고 롤랜드 그래포우가 들어오면서 ‘Cameleon’이라는 앨범을 발매했을 때였는데, 갑자기 스윙재즈같은 곡이 나와서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노라조의 신곡은 사람들이 ‘노라조는 역시 이래야지’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곡을 썼다. 더군다나, 정규앨범이 아니라 싱글이라면,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기존의 <고등어>, <카레>를 계승하는 방향으로 힘을 싣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가 싶었고, 그 결과 <야생마>라는 곡을 만들게 되었다. 그동안의 곡 중 가장 다이나믹하고 빠른 노래가 아닌가 싶다.
j : 이번에 나온 <야생마>에 노홍철씨가 많은 도움을 줬다고 들었다.
노 : 노래를 만들고 나서 홍철이에게 들려줬더니 ‘너무 좋아~’라고 말해줘서 녹음을 같이 하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홍철이가 아주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는데, 노래를 들으면 홍철이밖에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아마 이 부분은 누가 해도 홍철이가 아니면 이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홍철이가 <야생마>에 애착이 굉장히 강해서 본인이 나오는 방송에서 곡을 내보내자고 한 적도 있었는데, 곡의 발표시기가 어느 정도 정해져있다 보니 미안하게도 고사했다. 지난 9월 달에는 ‘나 혼자 산다’라는 방송에 <야생마>를 녹음하는 장면을 내보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음원이 2달 앞서 나갈 수밖에 없으니 이것도 고사를 하게 되었다. 노래를 녹음할 때 홍철이가 많은 도움을 줬는데, 원래는 전주가 먼저 들어가고, 전주가 끝나면 노래가 시작되는 형태였지만 홍철이가 ‘도입부분에 ‘야생~마~♬’라는 부분을 넣어보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 결과 지금의 <야생마>가 만들어졌는데, 오랜만에 발표한 음원인 만큼 홍철이의 기운을 받아서 잘해볼 생각이다.
j : 앞으로의 일정소개를 부탁드린다.
노 : 1월에 오사카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보통 일본에서의 공연이라 하면, 한류공연이라는 명칭으로 개런티도 많이 받고 티켓가격도 많이 받는 형태를 취하겠지만, 그런 건 우리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규모 공연장에서 미니콘서트와 비슷한 느낌의 공연을 펼쳐보려고 계획 중이다. 한류의 이름을 빌린 것이 아닌,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노라조’로서의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