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유럽은 전쟁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 전쟁이 세계대전이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거대해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채로 말이다.
시작은 발칸 반도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암살이었다. 발칸 반도는 오스만 제국이 약해지면서 그리스를 시작으로 여러 나라들이 독립했고, 오스트리아 제국과 러시아가 영향력을 넓히고 있었다. 슬라브계 국가인 세르비아는 세르비아계가 많은 보스니아를 원했고,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방문은 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났고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강경한 최후통첩을 보낸다. 오스트리아와 동맹인 독일이 이를 지지했고, 세르비아의 후견인 러시아도 세르비아를 돕고 나섰다. 문제는 러시아의 동맹인 영국과 프랑스였다. 독일은 서로는 프랑스 동으로 러시아라는 양면전쟁을 겪어야 했고, 이를 위해 프랑스를 단기에 꺾는다는 내용의 ‘슐리펜 계획’을 세워놓았고, 실행했다. 하지만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영국과의 협상을 시도했고, 영국 역시 참전할 생각이 크게 없었다. 문제는 슐리펜 계획의 시작은 중립이었던 벨기에 침공이었고 영국이 이를 좌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빌헬름 2세는 이를 알고 계획의 수정을 명령했지만 군부에서 반대한다. 이미 모든 계획이 짜여 있어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독일은 벨기에를 통해 프랑스를 침공했고 영국은 참전했으며 4년간의 지옥이 펼쳐지게 된다.
유럽은 보불전쟁 이후 40여년간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발칸 반도 등에서 일어난 국지전 정도는 가벼운 편이었고, 강대국들은 ‘벨 에포크’라 불리는 평화에 젖어 있었다. 이성에 대한 확신을 가진 시기였고 과학기술의 발달과 식민지에서 오는 부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스팀펑크라 불리는 이 시대를 기본으로 한 장르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이를 앗아간 것이 1차 세계대전이다.
▲발칸 반도를 둘러싼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대립을 그린 만평
산업혁명을 통해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인구도 늘었다. 관료제 등 근대적인 제도는 이렇게 늘어난 인구와 물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고, 획일화된 공교육과 민족주의를 통해 각 나라들은 중세의 왕국을 넘어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근대 국가로 발돋움했다. 철도는 세계를 좁혀줬고 사람의 이동과 물자의 운송을 빠르게 만들어주었다. 절정을 달리던 근대 사상과 문화는 유럽인들 스스로를 문명인이라 여기게 해 주었다. 말 그대로 유럽의 시대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는 정반대로 작동했다. 변경을 허용치 못할 정도의 계획은 이미 인간의 손을 떠난 상태였고, 각 나라는 원하지도 않는 전쟁에 끌려들어가게 되었다. 철도를 통해 많은 군인들이 빠르게 전장에 도착했고, 기관총 등 발전한 무기들은 이들을 빠르게 시체로 만들었다. 노인들은 민족주의를 외치며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몰았고 젊은이들 역시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전장으로 가 그 값진 목숨을 허무하게 끝냈다. 그리고 이 희생을 통해 각 국가들은 사람을 더 많이, 효율적으로 죽이는 법을 배워 갔다. 사람들은 이 전쟁을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이라 불렀다. 하지만 다시 그보다 더 거대하고 끔찍한 전쟁이 일어났다.
그 뒤를 이은 건 ‘냉전’이라 불리는 진영간의 대결이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세계는 전쟁에 지쳤고, 정말 인류를 끝낼 수 있는 핵무기가 발명되면서 전쟁의 형태가 바뀐 것이다. 물론 냉전 중에도 6.25를 비롯한 끔찍한 전쟁들이 일어났지만 세계대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도 미국과 소련은 세계대전으로의 확대보다 동맹국을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
한편 유럽은 다른 지역보다 전쟁의 위협이 적은 지역이 되었다. 원수였던 독일과 프랑스가 협력을 시작했고 독일은 나찌와의 단절과 사과를 계속 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이 탄생한 것이다. 발칸 반도는 여전히 위험한 화약고이고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등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세계대전을 일으킨 강대국간의 대립도, 동서로 나뉘어 언제 세계대전이 다시 일어날지 모르던 냉전시대보다는 훨씬 평화로운 것이다. 최소한 우리가 알던 어느 시대보다 평화에 대한 목소리가 제일 높아졌기도 하다. 그럼에도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공하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다룬 [서부전선 이상 없다]
는 게 계속되는 걸 보면 아직 멀었을 것 같긴 하지만.
사라예보에서의 총성이 유럽을 휩쓸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다. 하지만 그렇게 전 유럽이 전쟁에 휩쓸렸고, 얼마 안 가 전 세계가 휩쓸렸다. 그러고도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는 공포가 오래 이어졌다. 지금은 조금 완화되었을 뿐이다. 어떤 우발적인 일로 세계가 불타오를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게 어느 것이든 핵무기 덕분에 이전의 세계대전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건 우리 자신한테도 해당되는 얘기이고, 한국이 있는 동아시아 역시 유력한 세계의 화약고이다.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면서 1차 세계대전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전쟁과 평화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