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변이 발생했던 초기에 원균이 이순신에게 구원해 주기를 청했던 것이지 이순신이 자진해서 간 것이 아니었다. 왜적을 토벌할 적에 원균이 죽기로 결심하고서 매양 선봉이 되어 먼저 올라가 용맹을 떨쳤다. 승전하고 노획한 공이 이순신과 같았는데, 그 노획한 적괴와 누선을 도리어 이순신에게 빼앗긴 것이다. 이순신을 대신하여 통제사가 되어서는 원균이 재삼 장계를 올려 부산 앞바다에 들어가 토벌할 수 없는 상황을 극력 진달했으나, 비변사가 독촉하고 원수가 윽박지르자 원균은 반드시 패전할 것을 환히 알면서도 진을 떠나 왜적을 공격하다가 드디어 전군이 패배하게 되자 그는 순국하고 말았다. 원균은 용기만 삼군에서 으뜸이었던 것이 아니라 지혜도 또한 지극했던 것이다."
왜란이 끝난 후 공신을 정하면서 선조가 했던 말이다. 왕이 말했으니 원균은 정말 명장이었던 것일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오래전에 나온 상황이었다.
원균옹호론에선 사료의 부족을 내세운다. 이순신은 기록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진실이 담긴 사료는 아주 적고, 때문에 작은 걸 발견해도 그걸 크게 내세운다. 문제는 그들의 말과 달리 조선은 기록의 나라였고, 특히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차고 넘칠 정도의 사료가 있다.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거기서 말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아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는 원균이 초기에 배를 불태우고 도망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기록의 가치는 상당히 높은데, 조경남이 공문서를 직접 베낀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원균에겐 불리하고 이순신에겐 유리한 기록만 잔뜩 있을 뿐이다. 헌데 원균옹호론에선 난중잡록이 진실을 말해주는 사료로 취급된다. 물론 원균에게 불리한 말은 다 빼고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원균의 죽음을 보며 충신이라 평가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보고 원균이 충신이긴 했구나 하고 생각해 볼 순 있다. 하지만 그건 난중잡록 내의 다른 기록들과 다른 여러 사료들을 종합해서 내려야 할 것이다. 원균옹호론에는 그런 것을 찾을 수 없다. 안 좋은 건 모두 왜곡으로, 좋은 것 한두줄을 금과옥조로 삼을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 성경은 [원균행장록]이다. 후손들이 원균을 기리기 위해 쓴 것이다. 당대의 사람들이 남긴 기록과 수백년 후 후손들이 조상을 띄우기 위해 쓴 것, 어느 쪽이 더 가치가 높을까? 거기에 양쪽의 말이 크게 다르다면 말이다. 지금도 그 후손들과 원균이 태어난 곳에서는 원균옹호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순수하게 학구적으로 원균을 재평가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들의 주요 타겟은 [선조수정실록]이다. 수정실록을 지은 이식이 이순신의 친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원균은 철저히 왜곡됐고, 이순신만 띄워줬다는 식이다. 하지만 수정실록은 어디까지나 실록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전국에 남아있던 기록들을 끌어모아서 만든 것이다. 원본들이 이순신 편이었으니 수정실록이 이순신 편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함정이 있는데, 수정실록은 원균 편이었던 서인들이 썼다는 것이다. 물론 그 얘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이렇게 원균행장이라는 성경과 수정실록이라는 악을 만들었다. 여기에 선조실록과 난중잡록 등 여러 부분에서 유리한 것들을 모은다. 같은 사료에서 나왔더라도 이순신에게 유리하면 승자의 왜곡이고 원균에게 유리한 건 마지막 남은 진실이다. 그 기록을 남긴 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차근차근 분석해보면 정말 허점이 많은 주장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소설로 나오고 드라마까지 나왔다. 약자로 포장하는 것과 '숨겨진'이라는 말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매력, 정치적인 의도 등 때문이었다. 대중들이 아는 역사를 바꾸는 건 이리도 쉬웠다.
원균은 시작일 뿐이었다. 약자, 박해, 탄압, 숨겨진 영웅 등의 코드는 현재의 기황후까지도 이어졌다. 앞으로 또 어떤 '숨겨진 영웅'이 밝혀질지 모르고 말이다. 그 숨겨진 영웅을 다룬 소설이 뜨고 드라마가 방영되면 다시 '우리가 아는 역사는 거짓이었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열심히 반박하면 '픽션일 뿐이다'는 말로 맞받아칠 것이고.
TV와 인터넷 등을 통해 역사왜곡이 참 쉬워지게 되었다. 그만큼 역사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