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5 15:22

[눈시칼럼] '기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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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들, 그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창작물이기에 그 세계는 작가가 직접 창조한 세계이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가치관이 잘 녹아들어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창작물과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 세계의 인물들은 실존했던 인물들이고 현대를 다룰 경우 현재까지도 생존해 있는 인물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의 의도대로 만들더라도 그 실존인물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특히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사극에서 큰 문제가 발생한다. 역사에 나온 그대로, 즉 고증에만 주력하면 다큐멘터리가 될 뿐이다.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표현하고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이야기를 만들어야 된다.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창작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창작을 하는 거니까.

 

하지만 그 해석이 설득력이 없다면? 아무리 연구해도 다른 평가를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왕인데 폭군으로 만들었다면 어떻게 될까. 혹은 그 반대라면? 인물을 재평가 한다고 했는데 그 이론이 틀렸다면?

 

사극 등 창작물은 재평가의 매력에 빠지기 쉽다. 학계에서도 다루기 어려워하는 것을 픽션이라는 이름하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인물이 알고 보니 잘났다는 식의 자극적인 말은 시청자에게 어필하기도 쉽다. 여기에 진정한 역사’ ‘승자에 의해 가려진 패자등의 문구를 넣어주면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문제가 되면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면서 둘러대거나 픽션일 뿐이라고 맞선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말이 설령 맞다 하더라도 왜곡에 대한 당위는 없다. 패했기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패자를 재평가 한다는 것, 이건 100% 창작과 다를 게 무얼까? 그냥 가상의 세계를 만들면 되는 일이다. 무엇보다 진정한 역사니 하는 말을 역사에서 이름만 따왔다는 걸로 바꿔야 될 것이다.

 

픽션에서 어디까지를 허용해야 하는지는 확실히 큰 문제이다. 시청률에 도움 되는 파격적인 해석덕분에 최근의 사극들은 거의 전부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아예 역사에서 모티프만 딴 시대극이라면 모르겠지만, 사극은 재현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파격적인 해석역사왜곡은 오늘도 싸우고 있다.

 

그 기준을 확실히 긋기엔 어려운 게 사실이다.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창작물이고, 아무리 고증에 충실하다 해도 어느 정도의 창작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지식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도 다르다. 비슷한 정도라도 어느 것은 용납할 수 있는 재평가고 어느 것은 인정할 수 없는 역사왜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주관적인 부분 때문에 기준을 정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기준이 어렵다고 극단적으로 치우친 것까지 같이 넘어갈 수는 없다.

 

드라마 기황후, 기획의도는 참 당당하다. 공녀로 끌려가서 황후의 자리까지 오른 그녀를 통해 현재를 돌이켜보고 미래의 비전을 꿈꾸자는 것이다.

 

그녀 개인의 삶을 보자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얘기이다. 정말 온갖 고생을 다 겪고 여자의 몸으로 원나라의 실권을 쥐었으니까. 한국 역사에서 이보다 더 입지전적인 인물이 있긴 할까? 거기다 그녀 덕분에 원에 고려의 풍습, 고려양이 퍼졌다 하니 이것도 참 좋은 소재다.

 

문제는 그녀가 한 일이다. 그녀가 집권한 후 고려의 공물은 급증했고, 기철 등 그녀의 가족은 고려에서 온갖 권세를 휘두른다. 이에 공민왕이 기철을 암살하자 고려를 장악하려 하다 실패한다.

 

한국사에서 볼 때 도저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 개인의 공과를 다 보여주며 개인의 처세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기획의도와 크게 어긋난다. 남의 나라 가서 고생해서 성공한 후 조국을 배반하고 뜯어먹으라는 교훈을 줄 순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기획의도에 맞춰서 사람을 바꿀 수밖에.

 

그녀와 함께 전혀 다른 이미지로 소개된 사람이 충혜왕이다. 온갖 폭정을 저질렀고, 특히 수많은 여인을 성폭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그의 새어머니가 되는 경화공주를 성폭행한 것이다. 원나라 출신임에도 신하들을 시켜 사지를 묶고 성폭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드라마 소개는 일부러 망나니인 척 하는 자로 나왔고, 오히려 피해자인 경화공주가 사치를 좋아한다는 등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왔다. 당연히 수많은 비판이 뒤따랐고, 충혜왕은 왕유라는 가상인물로 바뀌었고 경화공주는 삭제되었다.

 

기획의도에 맞춰서 고려에 피해를 준 기황후와 한국사 최고의 폭군으로 평가되는 충혜왕이 변한 것이다. 이것을 역사왜곡이라 하지 않으면 무엇이 역사왜곡일까? 이에 대한 우려와 함께 비유를 쉽게 볼 수 있다. 이완용이 대한제국 최고의 충신이 되는 등의 비유 말이다. 근거를 대라면 기황후와 충혜왕보단 더 쉽고 많이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청률만 잘 나온다면 언제든지 사극으로 나올 수 있다.

 

사극은 국민들이 가장 쉽게 역사를 접할 수 있게 해 준다. 사극 하나가 인기를 끌면 과거 위인은 그 사극에서 나온 이미지가 박힌다. 그리고 사극의 성공을 통해 많은 다큐와 책이 나오고, 그걸 통해 그 시대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사극에서 왜곡을 할 경우 잘못된 정보가 전국으로 퍼지게 되고, 오래 남아서 고치기도 힘들어진다. 그런 사극이기에 픽션이라는 변명에 앞서 최대한 고증과 설득력 있는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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