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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과 한글날 그리고 가나다라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세...

위의 문장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 첫 구절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이 문장은 새로운 글자를 만들게 된 구체적인 이유와 문자의 탄생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첫 구절이기도 하며 우리말인 한글의 시작을 알리는 문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언제 부터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일까? 잘 알고 있는 것 같겠지만 막상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누구나 잠시 당혹스러워 할 것이다.

한글 그 자체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인 <훈민정음>의 반포는 지금으로 부터 567년전인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이루어졌다. 아울러 조선의 4대 임금이자 성군인 세종대왕 께서 만들고 반포한 우리 문자인 한글은 그 우수성에 있어서도 세계가 인정할 만큼 최고의 문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런 한글을 기념하기 위한 한글날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에 시작되었다. 우리 문자인 한글을 통해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민족혼을 되살리기 위해 1926년에 <가갸날>로 지정한 음력 9월 29일이 그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1928년에 <한글날>로 정식 개칭되었으며 1946년 부터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반포일(1446년 당시 음력 9월 상순에 반포되었으며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여 정함)인 양력 10월 9일을 한글날로 변경하고 공휴일로 지정하였으며 1949년 부터는 국경일로 지정하여 한글을 기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노는 날이 너무 많으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경제 단체들의 터무니 없고 이상한 논리에 떠밀려 1990년에 한글날은 국경일에서 제외되는 참담한 굴욕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 외유 끝에 2013년 10월 9일에 한글날은 국경일이자 공휴일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 왔다.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어렵게 다시 돌아온 우리 문화 국경일인 한글날을 이제는 과거 보다 더욱 소중히 보듬고 지켜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우리 문자인 한글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제목의 우리 가요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상당히 많지 않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알기에 몇 곡 존재하고 있지 않다. 그나마 1970년대에 <신중현>이 작곡하고 우리나라 사이키델릭의 여제 <김정미>가 불렀던 <가나다라마바>와 허수아비 춤으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던 <송창식>이 1980년에 발표했었던 <가나다라> 정도만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을 뿐이다.(<기역 니은 디귿 리을>이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발표하면 조금 이상할려나?)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 감상실 이름이기도 하며 프랑스 샹송의 제목이기도 한 <세시봉(C'est Si Bon)>이라는 말이 한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과거로의 추억 여행에 동승시켰던 때가 있었다. 서울의 무교동에서 1953년에 개업을 했었던 음악 감상실 <세시봉>에는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같은 가수들이 출연하여 통기타를 치며 외국의 팝 음악을 들려 주기도 했었는데 아마도 당시로써는 외국 팝 음악의 전파를 담당하는 최전선이 바로 세시봉이었을 것이다.

이런 세시봉에서 개최했었던 <대학생의 밤> 행사에서 서울 예고를 중퇴한 송창식은 대학생으로 위장 출연하여 처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7년에 윤형주와 듀오로 <트윈폴리오>를 결성하고 장년층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곡인 하얀 손수건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트윈폴리오를 뒤로 하고 1970년 부터 솔로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한 송창식은 <피리부는 사나이>를 시작으로 <고래 사냥>, <왜 불러>, <토함산>, <새는>, <날이 갈수록> 등의 많은 히트 곡을 탄생시켰으며 1975년에는 <왜 불러>로 <MBC 10대 가수상>에서 <가수왕>으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더불어 1978년 부터 3년 연속으로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었던 송창식은 1980년에 또 한장의 음반을 발표햇었는데 그 음반의 제목이자 타이틀 곡의 제목이 바로 <가나다라>였다. 트윈폴리오 시절 남의 노래인 외국의 팝송만 주로 들려 주었던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으로 트윈폴리오 해산 이후 의식적으로 우리 노래를 부르려고 노력했다는 송창식은 <가나다라>에서도 드러머인 <이건태>가 연주하는 꽹과리 소리를 삽입하여 국악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당시로써는 꽤나 신선한 발상의 <가나다라>로 송창식은 1980년에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했었던 것이다. 참고로 송창식의 창법을 예전과 비교해 보면 현재에 이르러 미묘하지만 약간 달라진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들려 주는 송창식의 노래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멋이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예전의 같은 노래들에서는 진솔함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송창식은 여전히 송창식 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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