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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 만화를 보는 소년(만보소) - 사이버포뮬러]


독자들에게 좀 더 생생한 정보와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일념 하나로, 168은 몇 주전 새 지면 화보 촬영을 위해 충청도에 갔다. 촬영지가 멀리 떨어져 있는 당일취재여서 아침 7시부터 모여서 촬영하러 갔다. 참석 에디터들은 다음과 같다.


편집장 : 이태원 거주, 단정한 미남, 독설가.
부편집장 : 168의 실무담당. 목소리 좋음. 운전, 포토, 인터뷰, 화보모델, 춤까지 다 섭렵.
홍대리 : 딱 부러지는 여군 느낌. 알파걸. 높은 확률로 안 웃는다.
만화를 보는 소년 : 늘 그렇듯 아무 생각이 없다.


아침 7시, 전날 잠을 자지 못해 부은 얼굴로 집결지인 이태원에 모여서 차를 탔다. 나와 마찬가지로 붓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의 부편집장(이하 조 부편)은 차를 운전하고 다른 에디터들은 그저 얻어 타기만 하면 되었다. 어차피 가는데만 3시간 걸려서 그냥 차에서 선잠을 잘 각오를 하고 나는 만보소답게 집합 전까지 집 근처 만화방에서 밤을 샜다.

사실 나는 문화지 168을 황색언론으로 만들자!는 조 부편님의 은밀한 야망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만 이 분이 친히 운전대를 잡는다고 하니 왠지 모를 불안이 밀려왔다. 그래서 기꺼이 조수석의 인간 네비게이션을 자청했는데 아니나다를까. 3명 승객의 목숨을 담보로 한 조 부편의 건실한 듯 화려한 드라이브는 우리를 설레게 했고 우리들의 소박한 소원이던 선잠조차 저 멀리 달아나게 만들었다. 신들린 운전 내내 매드맥스!!! GTA!!! 아아아악!! 이란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건 너무 박한 평가고 내 기준에선 사이버 포뮬러같은 상황이었다. 조 부편님의 운전자로서의 역량은 사이버 포뮬러에 나오는 제로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사이버 포뮬러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사이버 포뮬러 시리즈는 원제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라는 가상의 레이싱 만화다. 1991년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로 유명한 제작사 선라이즈에서 만들었고 우리나라에는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로 수입이 되어 공중파에서 방영되었다. 내용인즉슨 주인공인 카자미 하야토가 아버지가 설계한 레이싱 머신인 ‘아스라다’를 우연히 타게 되고 사이버 포뮬러라는 레이싱 경기에 참여하게 되면서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속편으로는 11, ZERO, Early Renewal, SAGA, SIN이 있다. 마지막 OVA였던 SIN에서는 카자미 하야토가 아닌 그의 좋은 형이자 조력자, 선의의 라이벌이었던 블리드 카가로 주인공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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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사이버 포뮬러라는 경기는 룰만 지키면 머신의 제약은 상관 안하기 때문에 드라이버의 실력보다는 머신의 기능이 더 중요하다는 묘사가 있다. 그래서 주인공인 하야토는 테스트용이었던 아스라다에서 슈퍼 아스라다 시리즈로 머신을 갈아탔고 드라이버로써의 실력이 한계에 다다른 ‘제로의 영역’을 습득했을 때도 머신의 스펙 차이로 경기에서 졌기 때문에 ‘뉴 아스라다’로 갈아탄다. 이처럼 극중에서 머신의 능력이 어마어마하게 중시되며 따라서 서포트 담당인 메카 디자이너의 이야기들도 비중이 크다.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화려한 레이싱 씬들을 제외한다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머신을 개발하고 업그레이드시키는 과정이 가장 인상 깊었다.


레이싱 스포츠를 소재로한 이 만화 시리즈가 인기를 끈 점에는 매력적인 캐릭터들도 한 몫 한다. 전형적인 소년만화의 성장형 주인공인 카자미 하야토, 주인공보다 더 쿨하고 멋지며 가장 최근작인 SIN에선 아예 주연을 꿰차는 블리드 카가, 귀공자 란돌, 진정한 남남케미를 보여주는 잭키&구데리안 등 개성만점 다국적의 레이서들은 오로지 ‘가장 빠른 사나이’의 꿈을 쫓으면서 성장한다.


그 외에 사이버 포뮬러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제로의 영역이다. 제로의 영역이란 머신 안에서 운전하는 드라이버가 온 감각이 극으로 예민해져 잠시 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아버린다는 일종의 예지능력이다. 그래서 제로의 영역에 들어선 드라이버는 이대로 주행한다면 다음에 일어날 일을 본능적으로 알아버리기 때문에 미리 한발 앞서서 판단할 수가 있다. 마치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에서 파일럿들이 겪는 뉴타입 능력과 똑같은데, 실은 사이버 포뮬러 감독이 건담을 오마쥬했다고 한다. 하물며 제작사도 똑같은 ‘선라이즈’니까 말 다했다. 심지어 뉴타입처럼 제로의 영역을 겪는 드라이버끼리도 찰나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다만 이 능력은 앞서 말했듯 드라이버의 기량 향상보다는 감각을 극대화시킬 뿐이기 때문에 머신의 차이가 현저히 벌어지면 이를 극복하지는 못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발휘할 수 있는 찰나의 초감각 정도로 생각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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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전날 제대로 자지 못하고 3시간이나 장거리 운전을 하던 극한의 상황에서 조 부편님은 제로의 영역에 들어섰던 게 확실하다! 말 한번 섞어본 적도 없는 앞차 드라이버가 친절하게 길을 터주면 그걸 알고 답례신호로 의사소통을 하는 진정한 매너남이다. 반면 한참 먼발치서 무리하게 끼어들려는 욕심많은 비매너 드라이버를 보면 내색은 안하지만 속으로 꾹꾹 눌러담는 게 보인다. 원래 점잖은 사람이 한번 분노하면 그 여파는 무시무시한데 조 부편님도 마찬가지다. 운전 내내 참고 참고 또 참다가 한번 폭발하면 절대 나쁜 드라이버와는 타협을 안 한다! 우직하게 차가 끼어들려고 해도 무시를 하고 그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반면 장거리 운전 내내 서서히 리미터가 해제되려는 부편집장의 분노가 차체로 전달되기 시작하자 나머지 에디터들은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는데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써보겠다.


편 : 조부편! 억지로 끼어드는 차 있으면 그냥 한번 참고 비켜줘. 너무 화내지 말고.
만보소 : 부편님 진짜 부편님 믿어도 되죠?! 저 아직 사망보험 안 들었는데!!
부편 : Trust me!
홍대리 : 만약 부딪치게 된다면 그때는....... 그냥 고통없이....... 제발 한 번에.......
부편 : 홍, 잘 안 들려. 뭐라고?!
홍대리 : 한 번에 끝내달라고욧!!! 악! 아악! 조부편님!! 앞!
부편 : 괜찮아. 괜찮아. 안전거리 유지했어. 저 차가 무리하게 끼어든거야.
편 : 조부편, 우리 취재하러 가는거지 천국가는 거 아니다!!
만보소 : 근데 저기 빨간 차 여자 예쁘네요!
편 : 누구?
부편 : 어디?!
홍대리 : 하여튼 남자들이란 그저 예쁜....... 조부편님!! 앞! 아악!!!! 앞!!!
만보소 : (안전벨트를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으으....... 아무튼 저 여자 예쁜데 부편님은 어떤 스타일 좋아하세요?!!
편 : 조부편은....... 요새 레이나 좋아해.
만보소 : 아하! 레이나 좋아하시는구나!!

부편 : 어....... 음...... 나는 레이나 같은...... 스타일.......
(전방은 쳐다보는데 점점 눈에 총기가 흐릿해지며) 그러니까.......?
눈이 동글동글하고.......
아담하고.......
귀엽고.......
참하고.......
그런 스타일 좋아해.......

편 & 홍대리 & 만보소 : 앞!!!!!!!!


분명 초점이 흐려진 조 부편님의 눈에는 어두컴컴한 도로가 펼쳐지며 방긋 웃는 레이나 얼굴밖에 보이지 않았을 거다! 조 부편님은 정말이지 레이나밖에 모르는 바보!! 아무튼 이렇게 아찔한 순간이 몇 번 있었으나 제로의 영역에 다다른 조 부편님 덕분에 무사히 촬영 잘 하고 집에 올 수 있었다. 이 지면을 빌어 왕복 8시간 동안 눈 한번 못 붙이고 운전하느라 고생하신 명 드라이버 조 부편님께 감사의 말씀을 보냅니다! 조 부편님의 운전 덕분에 오늘날까지 이렇게 살아서 밥도 먹고 만화도 보고 글도 쓰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더욱 분발해서 언젠가 있을 부편집장님의 은밀한 쿠테타에 날개를 달아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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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수요일 : 만화를 보는 소년(만보소) - 사이버포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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