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괴즐의 빠돌이즘]
서태지 편: 4화 의심의 시작 <교실이데아>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 보다 더. 하나씩 머릴 밟고 올라서도록해 좀 더 비싼 네가 될 수가 있어."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저도 여느 고등학생처럼 입시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던 학생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교육 시스템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 본적이 없었던 순진한 학생이었지요. 그러한 제게 이 노래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교실이데아>의 가삿말이 점점 가슴에 와닿았고, 그건 수능의 시간이 가까워 갈수록 강해졌습니다. 이 노래가 처음 나온 것은 1994년이지만, 제가 이 곡을 만난 것은 2000년 즉 제가 고1때 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고1 시기를 지내고 본격적으로 입시지옥에 들어간 고2 때 부터, 이 곡의 메시지를 절감해게 되었지요.
우리는 함께 야자를 했고, 함께 놀이를 했고, 함께 공부를 하면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다들 재능은 달랐고 관심도 달랐지만 즐거움과 노력을 나누면서 깊은 관계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매번 옆의 짝궁이, 친구이기 이전에 경쟁자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의심을 심어주었고, 배신을 예언했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현실'을 상기시켜줬던 것 뿐이었겠지요.
같이 졸더라도 공부를 못하는 애는 귀싸대기를 맞았고, 공부를 잘하는 애는 안마를 받았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애가 조는 이유는 밤에 놀았기 때문이고, 공부를 잘하는 애는 밤에 공부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선생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저는 귀싸대기가 확실시되는 학생이었기에 그 선생님의 수업시간만 되면 얼마나 졸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물론 저도 빰을 맞던 많은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과외와 학원 때문에 잠이 부족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성적순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면 전원이 교실 앞으로 나와 1등부터 자리에 앉는 방식을 취했지요. 그리고 세심한 선생님은 그 과정에서 이번에는 누가 누구를 제쳤고, 누구가 누가한테 밀렸다는 것을 소상히 알려주었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지요.
같이 축구를 해도 "너 이번에 몇등이었냐? 이럴 때냐?"와 "너도 이런 애처럼 되려고 그러냐?"를 나란히 서서 들었고, 같이 야자 공부를 하고 싶었어도 성적 차이 때문에 따로 공부를 해야했습니다(교실과 SKY 전담반).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너네는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얘네가 너네들 먹여 살릴 거다."라는 말보다 저를 참혹하게 했던 건, 친구를 밟아야만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왜 선생님들은 대학 진학을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더불어서 함께 잘사는 것에 대한 상상력이 없었던 당시에는 뭔가 이상한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답함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이었던 저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정언명령과 현실 사이에서 비약적 유토피아를 꿈꾸기도 했었지요. "어떻게 해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나요?" "서울대에 가면 된단다."
<교실이데아>는 지금 나를 지배하는 제도적 법칙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려줬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서태지는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라고 제게 물었지만, 저로서는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안 왔습니다. 서태지처럼 자퇴를 하는 것이 정답이었을까요?
제가 후에 인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 학창시절의 이러한 경험과 서태지를 계기로 인식한 당연한 것에 대한 '의심'이 아닌가 생각하곤 합니다.
선생님들은 우리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그래서 부득이하게 서로를 서로의 적이 되게 유도했지만 우리는 끝까지 서로가 적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선생님의 노고에 감명 깊어 은혜를 갚으로 찾아가지는 않습니다. 저 같은 귀싸대기파는 그렇다 쳐도, 명문을 찍은 친구들도 선생님을 찾아가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역시도 안타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상 선생님들도 피해자이기는 마찬가지일텐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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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otaiji Symphony' (Remix) [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