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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의 민낯을 재조명한다는 건 참 매력적인 일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승자를 위한 왜곡은 있기 마련이고 그걸 밝혀내면서 그 때의 진실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다. 그렇게 업적에 가려진 실책이나 피해자들을 찾아낼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 인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시대가 바뀌면서 인물의 행동이 정반대의 평가를 받기도 하고 광해군처럼 인물의 평가가 뒤집히는 경우도 있다. 정도전이나 궁예 등 패자에 대한 재평가는 드라마로 진출하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재평가 바람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역사왜곡을 파헤친다며 다른 역사왜곡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붙이는 말들은 참 자극적이다. 기득권에 의해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정의의 사도, 참 끌리는 말 아닌가. 하지만 그에 대한 근거는 빈약할 뿐이다. 근거가 빈약할수록 주장은 더 자극적이 되며, 정치적으로 이어진다. 과거의 기득권에 의해 묻혔고, 그 진실을 찾은 자신은 현재의 기득권에 의해 핍박받고 있다는 식이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는 말, 그들은 이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역사에 묻힌 피해자야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중요한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가르는 기준은 자극적인 주장이 아니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이다.

 

충무공 이순신, 한국사에 둘째라면 서러워할 영웅이다.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그는 쭉 성웅으로 존경받아 왔다. 일제강점기에도 독재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말하면 재평가의 도마에 올릴 때도 순위권에 들 것이다. 90년대부터 그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됐다. 크게 두 개로 나눠진다. 그저 나라 지킨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고뇌를 살펴보는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을 보는 것, 그리고 그가 정말 티끌 하나의 흠집도 없는 완벽한 성웅이었는가에 대한 의심이다. 이 둘을 한데 섞어서 얘기하기도 한다. 전자야 난중일기 덕분에 그의 슬픔과 고뇌를 더 가까이서 알 수 있고, 그에 대한 평가를 더 깊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후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다.

 

여기서 늘 나오는 인물은 원균이다. 임진왜란 때 경상우수영을 맡았던 인물이다. 졸장의 대명사로 시작하자마자 배를 다 자침시키고 도주했으며, 뒤늦게 나타나서는 방해만 했다. 이순신이 열심히 싸우는 동안 적의 목만 챙겨 공을 부풀렸으며, 심지어 조선인들의 목을 베어 왜군의 목인 것처럼 바치기도 했다. 뇌물을 계속 바치면서 이순신을 모함했고 마침내 파직시킨 장본인, 그리고 정작 자기가 조선 수군을 맡자 전멸시킨 인물이다.

 

이순신과 원균, 극과 극으로 갈린 행동과 평가들, 의심해보기에 충분하다. 정말 그랬을까? 이순신을 성웅으로 만들기 위해 원균이 피해 본 것은 아니었을까? 알고보니 이순신이 원균의 공을 뺏고 원균은 이순신의 과를 모두 뒤집어 쓴 건 아니었을까? 그것까진 아니더라도 원균 역시 나름대로 열심히 싸웠고, 나름대로 할 말이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은 합리적이며 필수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 이른바 '원균옹호론'은 이 의심을 곧 결론으로 내 버린다. 근거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나오는 사료가 '원균행장'이다. 다른 사료들에서 나오는 원균에 대한 불리한 기록은 다 그가 피해자라서 그렇게 기록된 것이며, 원균행장에 진실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장의 사료적인 가치는 극단적으로 떨어진다. 행장이라는 것은 그 가문에서 조상의 공을 기리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그 인물에게 유리하게 기록될 수밖에 없다. 다른 공적인 사료가 없는 상황에서는 이런 행장도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다. 왜곡이 얼마나 돼 있든 대체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하지만 조선시대는 세계에서 자랑할 만한 기록의 시대였고,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도 무수히 남아 있다. 이런 사료들 중에서 원균에게 가장 유리한 사료를 최우선으로 두고, 그에 상반되는 것은 무시하는 것이다.

 

물론 사료 하나로는 설득력이 없기에 다른 사료들도 인용한다. 하지만 역시 원균에게 유리한 것만을 선택하며, 왜곡이 뒤따른다. 원균을 가장 옹호한 선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몇 안 되는 진실의 목소리고, 나머지는 모두 왜곡되었다는 식이다. 이를 위해 뜬금없이 '선조수정실록'을 비판한다. 이순신을 위해 그에게 유리하게 왜곡한 것이 수정실록이고, 그걸 기반으로 나온 것이 현재의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평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조수정실록은 서인에 의해 만들어졌고, 선조 때 나온 여러 사료들을 엮은 것이다. 이순신에게 유리하게 됐다면 동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이순신이 옳다고 봤다는 얘기가 될 뿐이다. 또한 현재에도 수정실록은 선조실록의 부족한 부분을 참고하는 용도로만 쓰일 뿐 실록을 대체하진 않는다.

 

임진왜란 초기 경상우수영을 자멸시켰다는 것은 김성일 등이 쓴 공문서부터 조경남이 쓴 난중잡록에도 일관적으로 나타난다. 이를 뒤집는 건 원균행장 뿐이다. 이후 원균의 실책과 비리 역시 마찬가지다. 이순신에게 죄가 있다는 것 역시 당시엔 안 나오다가 선조의 입과 그걸 맞장구치는 신하들의 입에서 나올 뿐이다. 이렇게 한 사안이 정치적으로 왜곡되는 건 과거에는 일상다반사였으며, 현재에도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실록은 이렇게 왜곡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그럼에도 유리한 것만을 선택해서 주장한다는 것은 역사왜곡일 뿐이다.

 

90년대부터 이어진 원균옹호론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절정으로 사그라졌다. 인터넷에서 퍼진 만큼 그 반박 역시 인터넷으로 많이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순신에 대한 재평가 유행이 끝났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배울 점은 무조건적인 재평가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역사왜곡을 파헤친다, 패자를 재조명한다는 등의 명분은 달콤하지만 그 역시 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으며, 역사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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