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12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소품집.jpg


취미는사랑완본.jpg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사랑이요

 

날씨가 살짝 더워진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홍대의 어느 라이브 카페에서 소개팅이라는 진부한 자리에서 만난 그녀는 내 얼빠진 질문에 황당한 대답을 내놓는 것으로 날 혼란에 빠뜨렸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주선자 이자식이 나한테 앙심을 품고 엿을 먹였구나. 접때 빌린 돈 안 갚았다고 이렇게 복수를 하나 망할 자식

 

속으로 주선자 욕을 한바가지 쯤 하고 있던 중 내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그녀가 살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 농담이구요. 사실 사진 찍는 거랑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그 뒤로 이어진 그녀의 말들은 이랬다. 남들이 취미라 말하는 것들 중에 그녀가 좋아하고 자주하는 것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걸 취미라 말하기가 싫단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에 그런 가사가 있어서 그렇다는데, 그 내용이 흔한 취미대신 사람과 사람 사람사이 흐르는 온기를 소중히 하며 사랑을 취미로 삼는다.’는 그런 가사란다. 그 노래를 듣고 나서 부터 자신의 취미는 사랑이라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사이 흐르는 온기라???.

 

그럴듯한데? 노래까지 불러주며 설명해 주는 그녀에게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따듯함과 뜨거움 사이에서 고민 하는 듯한 6월의 햇살을 받으며 긴 생머리에 꽃무늬빈티지 원피스를 입고 바닐라 라떼를 홀짝거리며 자신의 특별한 취미에 대해서 설명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내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 참 곱게 미친 여자구나.

 

그 뒤로 이어진 소개팅 자리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차 마시며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그럭저럭 괜찮은 식당에서 저녁식사 후 헤어짐. 번호는 물어 보는게 예의 인듯해서 받아 두긴했지만 에프터 신청을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고, 성격도 좋아보였고, 착하고 예쁜 사람인 것 같았지만, 좀 특이한 사람 같아서 내가 감당할만한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프터 신청을 하진 않았고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이었다.

 

친구 놈을 만나러 나가는 길에 거리를 걷다가, 손님을 끌려고 틀어놓은 시끄러운 노래 소리가 끝나고 흘러나오는 멜로디가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미소가 어울리는 그녀, 취미는 사랑이라 하네~’

 

첫 마디를 듣는 순간, 바로 이 노래가 그녀가 좋아한다던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나는 거리 한복판에서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만화책도 영화도 아닌, 음악 감상도 아닌~’

 

두근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취미가 같으면 좋겠대~’

 

두근 두근

 

그냥 이상한 여자라 생각했었는데, 생각 외로 나는 그녀에게 반했었나보다. 전화기를 꺼내 그녀에게 보낼 메시지를 써내려간다.

 

잘 지내셨어요? 저도 취미를 좀 가져보려고 하는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난 어떤가 물었더니 미안하지만 자기 취향이 아니라 하네~’ 라는 구절이 흘러나올 때 쯤

바로 답장이 왔다.

 

싫어요


글 : 이시형(tigris0623@onair168.com)


List of Articles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Floyd의 음악이야기] 언더그라운드 뮤직 연재 - 1990년대 언더 = 인디 file 헤워 2013.07.12 2625
[Floyd의 음악이야기] 비긴어게인 file 냉동보관 2014.09.30 1333
[Floyd의 음악이야기] [소식] 2014년 상반기 내한 공연 아티스트 모음 file 냉동보관 2014.01.14 2706
[Floyd의 음악이야기] [Review] 박성하 2'st 싱글 file 냉동보관 2013.11.13 4322
[Floyd의 음악이야기] [News] 2014년 여름 락페스티발 정보 모음 file 냉동보관 2014.07.01 1699
[eerie의 악마의 로큰롤] 포스트모던 마녀사냥 - CocoRosie와 Lupe Fiasco file 호솜 2013.10.21 3969
[EERIE의 악마의 로큰롤] 서쪽은 어디인가 - Pet Shop Boys의 <Go West> file 내이름은김창식 2013.09.15 4384
[EERIE의 악마의 로큰롤] 뛰는 악마 위에 나는 악마 file 내이름은김창식 2013.08.10 2359
[EERIE 의 악마의 로큰롤] 악마적 경험의 다양성 - Black Sabbath의 악마주의와 Burzum의 악마주의 file 호솜 2013.07.14 3022
[eerie - 악마의 로큰롤] 서태지의 시간은 거꾸로간다 file 내이름은김창식 2013.06.13 5701
BIRD 찰리파커 (2부) file 호솜 2015.12.01 645
BIRD 찰리파커 (1부) file 호솜 2015.11.23 971
10분이면 OK! 달래무침 file 호솜 2016.04.20 898
03.[소품집] '그' file 호솜 2014.08.30 1376
02.[소품집] 국수 file 호솜 2014.03.13 1497
01.[소품집] 밑줄 친 책 file 호솜 2014.07.01 1561
01.[소품집] 어머니의 최근 검색어 file 호솜 2014.07.30 1681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Next
/ 7

로그인 정보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