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연극 기획취재 '오픈 런' <죽여주는 이야기>
글 : 정채호(cogh369@onair168.com)
편집 : 이혜원(hyou78@onair168.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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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사이트 운영자 겸 대표자 ‘안락사’는 직접 개발해낸 다양한 상품들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맞춤형 죽음을 선사하는 <자살 도우미>이다. 그는 수많은 상품들을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 만들어내는 천재적 두뇌의 소유자임과 동시에, 자신이 운영하는 지하 사무실에서 비밀리에 의뢰받은 일만을 처리하는 철두철미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고객의 자살을 방조하며 살아가던 ‘안락사’에게 어느 날, 조금은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다. 그 이름하여 ‘마돈나’···. 아름다운 이름과는 매치가 안되게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그녀는 자살의 이유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안락사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를 죽여 달라’고 말한다. 그녀와 함께 온 ‘바보레옹’ 역시 수상하기는 마찬가지. 어수룩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숨겨진 꿍꿍이가 있어보이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고객들의 비밀을 파헤쳐 보고자, 채널168의 꽃 정기자가 이봉근(안락사 役), 윤토왕(마돈나 役), 정강희(바보레옹 役)과의 비밀스런 접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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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이봉근(이하 ‘봉’) : 안녕하세요. ‘안락사’ 역을 맡고 있는 배우 이봉근입니다. 현재 나이 23살이고,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에서 연기한지는 1년 반 정도 되었습니다.
- 혹시 첫 공연이 어떠셨는지 기억나세요?
봉 : 제 첫 공연은 ‘바보레옹’ 역할이었어요. 연습은 많이 했지만 첫 공연이라 긴장한 상태에서 공연에 올라가서 많이 걱정했는데.. 그만 안락사의 손을 잘라 버렸어요(웃음). 손에 테이프를 감은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테이프를 잘라야 하는데 실수로 손을 잘라버렸어요. 그 때는 너무 끔찍했지만, 지금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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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토왕(이하 ‘왕’) : 안녕하세요. 마돈나 역을 맡고 있는 배우 윤토왕입니다. 나이는 서른이구요.
- 이름이 굉장히 특이하세요. 본명이신가요?
왕 : 네. 어렸을 때부터 사용했던 본명이에요. 특이하죠?
-‘마돈나’가 여자 이름이잖아요. 하지만 ‘죽여주는 이야기’에 마돈나는 여장 남자에요.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남자 마돈나만의 매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왕 : 일단 설정이 여자 마돈나보다 재미있어요. 남자가 여자 흉내를 내는 거니까요. 또 다른 매력으로는 마돈나가 남자이기 때문에 보다 더 에너지 넘치는 공연을 만들어낼 수가 있어요. 마돈나가 극 중에서 갈등을 만들어내는 역할이고, 실제로 부딪치는 장면이 많은데 남자이기 때문에 좀 더 강하게 부딪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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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씨도 소개 부탁드릴게요.
정강희(이하 ‘정’) : ‘바보레옹’은 절대 바보가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살인 청부업자이면서 동시에 도살업자입니다. 저는 소와 돼지를 죽일 때에도 눈빛으로 제압해서 죽이곤 하죠. 그런데 상황이 자꾸 저를 바보로 만들곤 해요. 원래 이름은 ‘레옹’이었어요. 그런데 상황이 어느 순간부터 ‘레옹’을 바보레옹이 만들었어요.
왕 : 지금도 연기 아닙니까?(웃음) 너무 심취하셨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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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스러운 질문인데요. 배우 생활을 하시다 보면 슬럼프도 분명 오셨을 거 같아요. 이럴 때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 : 음... 일단 술을 먹습니다. 이건 농담이구요.(웃음) 사실 극복하는 방법은 사실 정해져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고 ‘이게 왜 안 되나’, ‘저게 왜 안 되나’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다고 생각해요. 거창하게 슬럼프라기보다는 잘 되던 대사가 잘 안되고 그런 게 슬럼프라면 슬럼프인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면서 감을 잃지 않게 혼자 있을 때도 주저리주저리 연습해보고 이런 게 극복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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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생활을 오래 하셨나요?
정 : 네. 저는 15년 정도 했고요. 영화, 방송 쪽으로 많이 하다가 오랜만에 연극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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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강희 씨는 공연 시작 전 등장하셨을 때부터 관객들의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하시면서 분위기를 이끌어나가셨는데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저를 비롯한 관객들이 빵빵 터졌어요. 직접 대사를 만드신 건가요?
정 : 그럼요. 연구 많이 했죠. 어느 부분에서 터질 수 있는지 전부 연구를 하고 저만의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웃지 않을 수가 없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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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들과 함께하는 공연이기에 긴장이 많이 되실 것 같은데요. 매 공연 시작 전에 자신만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 있으신가요?
봉 : 공연 전에 저는 항상 무대 뒤에서 팔굽혀펴기를 해요. 그냥 들어오는 거랑 팔굽혀펴기를 해서 호흡이 가쁜 상태에서 숨을 터트리고 들어오는 거랑 많이 달라요. 마인드컨트롤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기도를 하구요. 그렇게 하고 공연 시작을 하면 무언가 편안한 느낌에서 공연을 하게 되고, 연기에 몰입도 잘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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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죽여주는 이야기’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에요. 실제로 배우분들이 공연 중간에 관객석에서 연기를 하고, 관객들이 직접 안락사가 만든 상품이 되기도 하구요. 전 쓰레기통 역할을 했죠(웃음). 혹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신가요?
왕 : 관객 참여형이기 때문에 매 공연마다 저희가 느끼는게 달라요. 참여를 안 할 때도 있고, 너무 오버해서 참여해주실 때도 있고 이렇게 매 공연이 다르게 진행된다는 사실 자체가 재미있는 것 같아요. 돌발행동하시는 분이 굉장히 많거든요.(웃음) 안락사가 묶여있는데 나오셔서 테이프를 잘라버리시는 분도 계셨어요. 지금은 여러 번 그런 적이 있어서 대처하는 방법이 있는데 처음에 이런 일이 있었을 때에는 저희도 당황해서 아예 엔딩이 바뀐 상태에서 공연이 끝난 적도 있었고요.
정 : 저는 소품 때문에 기억나는 일화가 있어요. 바보레옹은 칼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역할인데요. 칼이 도중에 빠진 거에요. 마침 가위가 눈에 보여서 가위로라도 대체해야겠다 싶어서 가위를 칼 대신 집었어요. 그런데 바보레옹 대사 중에 칼을 들면서 “칼퇴근!” 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 부분에 “가위 퇴근!”이라고 해버렸죠. 다행히도 당시 안락사 역할을 해주시는 분이 센스있게 마무리해주셔서 잘 넘어간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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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도 컴퓨터 마우스 던지는 장면에서 실수하신 거 맞죠?(웃음) 일부러 연출하신 게 아니구요.
봉 : 네(웃음). 완전 실수였어요. 이런 적은 처음이었구요. 사실 소품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 많아요. 저도 여러 가지가 기억나는데요. 사실 저희는 이런 일이 많다 보니까 익숙해요. 애드립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관객들도 저희의 실수를 알아차리시고 또 웃음이 터지고, 이런 게 참여형 연극의 묘미인 것 같아요. 오히려 요즘에는 관객분들도 그런 인간적인 모습들을 많이 원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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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가 직접 소개하는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에 대해 듣고 싶어요.
정 : 매력... 엄청나요(웃음). 재미있는 부분도 많지만 교훈도 있는 공연이에요. 우선 한 시간 반, 두 시간 남짓 짧은 시간동안 계속 웃을 수 있어요.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웃음으로 모든 것을 승화시켰지만, 내면에는 ‘우리가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이 아닐까‘ 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가 담겨있어요. 요즘 사회에 많이 이슈가 되는 ‘자살’을 주제로 하는 공연이잖아요. 공연을 마친 후에 극단적인 생각을 하셨던 분이 저희 공연을 본 후에 생각을 바꾸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어요. 정말 뿌듯했죠.
봉 : 무거운 마음으로 왔다가 가볍게 비우고 돌아가면서도, 한 번 쯤은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공연이에요. 사실 그냥 웃고 넘기는 공연들도 많거든요. 다시 찾아주시는 분들도 많구요. ‘힘들 때 문득 생각나는 공연’이라고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왕 : 먼저 ‘자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이 있겠고, 두 번째로는 관객 참여형 연극이라는 점을 들 수 있어요. 사실 저는 처음에 굉장히 낯설었어요. 제가 도전하는 첫 코믹극이기도 했고요, 그 전에 했었던 정극이나 다른 공연들에서는 관객들과 ‘무언의 벽’이 있는 듯한 느낌이 많았었거든요. 그런데 ‘죽여주는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관객들과 함께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신선해요. 예전과 달리 요즘 관객들은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공연만을 원하는 게 아니거든요. 스스로 참여하고 공연을 만들어나가고 싶어해요. 같이 나와서 춤추고. 배우와 관객이 ‘함께’ 공연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이 연극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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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
봉 : 누구나 한 번쯤은 회의를 느낄 수가 있잖아요. 저는 계속 갈증을 느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기에 대해서 끊임없이 갈증을 느끼고 싶다는 게 제 소망이에요.
- 약간 이제훈 씨 닮으셨어요(사심가득).
왕 : 기자님 아까부터 눈에서 하트 뿅뿅♡♥ 나오는 거 다 봤어요.(웃음)
정 : 나이 많아서 서러워서 살겠나. 에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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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ㅋ(웃음). 윤토왕 씨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신가요?
윤토왕 : 젊은 나이일 때는 ‘이런 배우가 되고 싶다’,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하는 생각이 많았었는데, 졸업한 지가 벌써 10년이 되었네요. 저는 그냥 배우가 되고 싶어요. 계속 할 수 있는 배우요. 별거 아닌 거 같은데 사실 쉬운 게 아니거든요.
정 : 저도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캐릭터 배우인 만큼 저는 여러 가지 역할을 광범위하게 할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한 가지 역할 안에서 틀에 박힌 역할 말구요. 마침 재미있는 얼굴도 가지고 있으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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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보면 정강희 씨가 맡은 역할이 참 어려운 역할이에요. 공연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감초 역할이랄까요.
정 : 그렇게 봐주신다면 정말 감사하죠. 사실 저는 별로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이 친구들에 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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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를 찾아주시는 관객들에게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왕 : (마돈나 톤으로) 놀러오세요.
봉 : ‘안락사’라는 역할이 계속 자살을 하라고 말하는 역할이잖아요. 궤변을 늘어놓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꼬시죠. 그런데 마지막에 그런 안락사조차도 살려달라고 하게 되요. 자기도 살고 싶은 거에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관객분들께 ‘삶’의 소중함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가벼운 마음으로 오셔서 재미있는 시간 보내시다가도, 삶의 의미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정 : 신나게 웃지만 그 안에 메시지가 있어요. 그게 저희 스타일이구요. 관객분들께서 그 메시지를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