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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jpg


뛰는 악마 위에 나는 악마

Run-D.M.C <King of Rock>

 

-by eerie

http://patricidaljubilee.egloos.com

 

많은 사람들이 로큰롤에 붙는 ‘저항의 음악’이라는 수사를 상식처럼 받아들인다. 유행의 첨단을 걷는다고 자부하는 힙스터라면 이런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수사에 맘이 설레는 우를 범하지는 않겠으나, 주로 1960년대를 전후해 영미권에서 형성된 이 대중적 이미지는 아직도 상당히 일반적인 편이다.

 



로큰롤 문화가 부상하기 시작한 1950년대에 미국의 기성세대 및 주류 정치인들이 위협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백인 기성세대는 20년대 재즈 문화의 부상 때 그랬던 것처럼 흑백 문화가 혼성화되어 있는 로큰롤을 두려워했고, 부모 세대와 전혀 다른 문화를 향유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우려를 표했다. 60년대 들어 베트남전에 미국이 참전하게 되면서 이를 반대하는 많은 로큰롤 뮤지션들이 등장했고, 이들의 저항적 메시지는 실제 젊은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만으로 로큰롤을 저항과 직결시키는 것은 일면적이다. 로큰롤의 인기몰이에는 많은 흑인들이 지적하듯 ‘흑인 음악을 훔쳐’ 색다른 척 해 보려는 백인들의 키치 정서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백인 계층의 구매력이 그 정서를 뒷받침할 수 있었기 때문에 로큰롤은 대자본의 입맛을 당기게 하는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었다. 애초에 흑인들의 음악이었던 블루스에서 탄생한 로큰롤이 어째서 수십 년간 백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질 수 있었는지를 아이러니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심심한 백인 10대들이 부모들을 엿 먹이기 위해 ‘흑인 음악’ 비슷한 것을 들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오히려 당연한 현상이다. 흑인 음악으로 부모를 화나게 한다는 것 자체가 백인이 아니면 불가능한 미션이기 때문이다.

 

또한 로큰롤의 부상은 당시 영국과 미국, 특히 미국의 물질적 풍요로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로큰롤은 2차 대전 후 가장 빛나는 승전국이었던 천조국의 장밋빛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베이비부머들, 즉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형태의 자본주의 사회 중산층 가정에서 10대 생활을 보낸 지구상 첫 세대인 그들을 겨냥해 대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저항이라는 단어가 미국 히피 세대, 혹은 그들에게 빙의하고픈 이들에게 얼마나 설레는 것이건 간에, 녹음 기술의 발전과 백인 중산층 10대들의 넉넉한 용돈의 만남이라는 물리적 교차로가 로큰롤 부상의 절대적 조건으로 작용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경제 호황에 기대 쉽게 무너질 망상에 빠져 있던 히피들의 실상에 가장 먼저 신랄한 비판을 퍼부은 하위 문화는 펑크였다. 섹스 피스톨스는 그들의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곡 중 하나인 <Who Killed Bambi?>에서 ‘누가 우리 밤비를 죽였나? 이건 세기의 범죄야. 히피를 절대 믿지 마. 난 밤비 살해범을 찾아내서 죽여버릴 거야. 그 썩을 놈의 로큰롤 군대(rotten roll army)에서.’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로큰롤 선배들의 권위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살기 등등하게 상대화시키던 펑크 역시 또 다른 관점에서는 그 자신이 상대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는데, 가장 치명적인 일격을 보여준 것이 바로 전설적인 랩 그룹 Run-D.M.C. <King of Rock>이다. 노래 메시지와의 완벽한 시너지를 보여주는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Run-D.M.C.는 섹스 피스톨스를 연상시키는 훼손된 영국 여왕의 그림, 전기 기타, 오래된 록 비디오, 주크 박스 등을 점잖은 박물관 속에 모두 쓸어 넣고 한껏 조롱한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로큰롤 박물관’은 클래식 록 아티스트들을 기리는 장소인 ‘로큰롤 명예의 전당’을 연상시키지만 놀랍게도 이 비디오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아직 개장되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은 로큰롤 박물관이야. 너희들이 올 곳이 아니야.’라고 비웃는 백인 경비원을 제치고 들어가 그들이 박물관 안에서 펼치는 랩 난장의 의미는 분명하다. 어디까지나 백인 문화에 불과한 로큰롤은 그들에게 아무런 상징도 아니라는 것. 어떤 이들에게는 엄청난 사회 변혁을 상징하는 하위문화이자 진지한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이었는지 몰라도, Run-D.M.C.에게 그것은 먼 나라 불구경 이상이 아니다. 박물관에 박제처럼 갇혀 있는 로큰롤의 유산은 피부색의 구획만 넘어가도 무의미해져 버리는 특정 문화의 한계를 신랄하게 드러낸다.

 

노래 제목에 나타나 있듯이 Run-D.M.C.는 이 노래에서 자신들을 새로운‘록의 제왕’으로 선포함으로써 저항의 음악으로 신성화된 로큰롤 역사를 뛰어넘으려는 야심을 보여준다. 유럽 전통으로부터 내려오는 ‘자신들만의’ 주류 문화인 기독교적 전통에 반항하는 로큰롤 뮤지션들의 악마 기믹 역시 이들 눈에는 간지러워 보일 따름이다. (너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냐) 나는 악마가 나한테 영혼을 팔도록 만들겠다’는 재치 넘치는 가사는 순식간에 백인 록 뮤지션들의 악마주의 전략을 꼬맹이처럼 만들어 버리는 힘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뛰는 악마 위에 나는 악마가 나타난 격이다.

 

그렇다면 흑인들의 힙합이 백인들의 록보다 더 진정성 있는 저항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모든 하위문화는 고유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힙합이든 록이든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Run D.M.C. <King of Rock>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한 문화의 패러다임 내부에 속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외부인에게는 쉽게 보인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정체성, 그들이 처한 환경이 다양한 만큼 저항의 의미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같은 장르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 사회라면 어느 곳에나 계급, 성별, 성 정체성, 그 외 개인의 특정한 상황 및 경험에 따른 무수한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이 존재한다. 그래서 록과 힙합 사이의 긴장, 여성 힙합 문화와 남성 힙합 문화 사이의 긴장, 마초 록 밴드와 게이 펑크 밴드 사이의 긴장 등은 쉽게 해소될 수 없으며 쉽게 해소하려 해서도 안 된다. 한쪽만의 관점으로 설정된 내부용 표준은 홈 구장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도 호환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항의 의미는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도 달라지고 상대화된다. 서슬 퍼렇게 로큰롤 박물관을 비웃던 Run-D.M.C. 2009 4, 후배 랩퍼 에미넴의 에스코트를 받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뛰는 악마도 나는 악마도 모두 시간이 지나면 클래식이 된다. 저항이란 원래 그렇게 항상 추상적이며 상대적인 말이다. 영원한 신도, 악마도 없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현재진행형의 다양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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