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사랑이요’
날씨가 살짝 더워진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홍대의 어느 라이브 카페에서 소개팅이라는 진부한 자리에서 만난 그녀는 내 얼빠진 질문에 황당한 대답을 내놓는 것으로 날 혼란에 빠뜨렸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주선자 이자식이 나한테 앙심을 품고 엿을 먹였구나. 접때 빌린 돈 안 갚았다고 이렇게 복수를 하나 망할 자식
속으로 주선자 욕을 한바가지 쯤 하고 있던 중 내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그녀가 살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 농담이구요. 사실 사진 찍는 거랑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그 뒤로 이어진 그녀의 말들은 이랬다. 남들이 취미라 말하는 것들 중에 그녀가 좋아하고 자주하는 것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걸 취미라 말하기가 싫단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에 그런 가사가 있어서 그렇다는데, 그 내용이 ‘흔한 취미대신 사람과 사람 사람사이 흐르는 온기를 소중히 하며 사랑을 취미로 삼는다.’는 그런 가사란다. 그 노래를 듣고 나서 부터 자신의 취미는 사랑이라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사이 흐르는 온기라???.
그럴듯한데? 노래까지 불러주며 설명해 주는 그녀에게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따듯함과 뜨거움 사이에서 고민 하는 듯한 6월의 햇살을 받으며 긴 생머리에 꽃무늬빈티지 원피스를 입고 바닐라 라떼를 홀짝거리며 자신의 특별한 취미에 대해서 설명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내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 참 곱게 미친 여자구나.
그 뒤로 이어진 소개팅 자리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차 마시며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그럭저럭 괜찮은 식당에서 저녁식사 후 헤어짐. 번호는 물어 보는게 예의 인듯해서 받아 두긴했지만 에프터 신청을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고, 성격도 좋아보였고, 착하고 예쁜 사람인 것 같았지만, 좀 특이한 사람 같아서 내가 감당할만한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프터 신청을 하진 않았고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이었다.
친구 놈을 만나러 나가는 길에 거리를 걷다가, 손님을 끌려고 틀어놓은 시끄러운 노래 소리가 끝나고 흘러나오는 멜로디가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미소가 어울리는 그녀, 취미는 사랑이라 하네~’
첫 마디를 듣는 순간, 바로 이 노래가 그녀가 좋아한다던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나는 거리 한복판에서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만화책도 영화도 아닌, 음악 감상도 아닌~’
두근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취미가 같으면 좋겠대~’
두근 두근
그냥 이상한 여자라 생각했었는데, 생각 외로 나는 그녀에게 반했었나보다. 전화기를 꺼내 그녀에게 보낼 메시지를 써내려간다.
‘잘 지내셨어요? 저도 취미를 좀 가져보려고 하는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난 어떤가 물었더니 미안하지만 자기 취향이 아니라 하네~’ 라는 구절이 흘러나올 때 쯤
바로 답장이 왔다.
‘싫어요’
글 : 이시형(tigris0623@onair168.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