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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자전거] 헤비메탈, 그 악마적 유혹의 시작 Black Sabbath



헤비메탈 음악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악마'라는 이름과 관련된 것들이다. 1970년대 초반 부터 대중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헤비메탈 음악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북유럽 출신의 밴드들에 의해 이런 악마적 이미지가 만개하였다. 그리고 이율배반적이게도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하여 현재 까지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애호가 층을 형성하고 있는 대중 음악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헤비메탈 밴드들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영국의 헤비메탈 밴드가 하나 있다. 헤비메탈 음악의 대중화를 선두에서 이끌었던 영국 밴드 '블랙 사바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블랙 사바스는 결성 초기에 블루스 음악에 기반한 강력한 하드 록 음악으로 헤비메탈 음악의 원형을 구체화 시켰는데 이런 밴드의 음악 속에는 사악한 목적을 가진, 반사회적이고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는 술법인 흑마술과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한 초자연적 현상인 오컬트(Occult)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즉 일반 대중들이 금기시 하던 요소를 음악에 대비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악마적'을 포함한 불가사의한 주제들은 블랙 사바스가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블랙 사바스 이전에 재즈 연주자들이나 미시시피 삼각주(Mississippi Delta)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델타 블루스 가수들에 의해 이미 시도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흥미 위주의 '악마적'인 이야기 거리는 텔레비전의 드라마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악마를 사냥하는 형제 퇴마사 샘과 딘이 등장하는 미국 드라마 수퍼내추럴(Supernatural)에서도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가 방영되었었다. 블루스 가수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기타 연주를 배웠다는 소문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그 에피소드는 로버트 존슨의 곡 'Cross Road Blues'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블랙 사바스의 기타 주자인 '토니 아이오미(본명: Anthony Frank Iommi)'는 애스톤의 이탈리아 출신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가 처음으로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드럼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드럼 연주가 아닌 소음에 가까운 토니 아이오미의 드럼 소리는 이웃 주민들로 하여금 민원을 야기 시키게 하였다. 결국 토니 아이오미는 시끄러운 드럼 대신에 기타를 선택하고 열다섯살 무렵부터 '버디 홀리(Buddy Holly)'등 유명한 연주자들의 노래를 기타로 연습하며 기타 연주자로써의 꿈을 키워나가게 된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 탓에 십대 시절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던 토니 아이오미는 어느 날 공장에서 작업을 하던 중에 실수로 오른손이 기계에 말려들어가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 사고로 오른손 검지와 중지의 첫 마디를 잃어야 했기에 유명한 기타 연주자가 되기를 소원했던 토니 아이오미의 꿈은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듯 했다. 


우연한 사고로 인한 신체적 장애에 따른 시름이 포기와 체념으로 이어지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토니 아이오미는 벨기에 출신의 집시 재즈 기타리스트 '쟝고 라인하르트(Django Rheinhardt)'가 단지 두개의 손가락만을 이용하여 기타 연주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서 아직 포기는 이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쟝고 라인하르트의 연주에서 희망을 발견한 토니 아이오미는 그때 부터 자신의 잘려진 손가락 끝에 골무를 씌운 후 기타를 연주하는 방법을 습득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기타 연주 연습에 매진하던 1968년 1월의 어느 날 토니 아이오미는 드디어 밴드 가입을 원한다는 광고를 애스톤 지역의 신문에 내게 된다. 그리고 그 광고를 본 드러머 '빌 워드(본명:William Thomas Ward)'의 전화를 받고 토니 아이오미는 헤비 블루스 밴드인 '미솔로지(Mythology)'에 가입하여 꿈에 그리던 밴드 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미솔로지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토니 아이오미는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제스로 툴(Jethro Tull)'에서 객원 기타 주자로 초빙할 정도로 연주 실력을 인정 받으며 서서히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토니 아이오미와 빌 워드가 미솔로지에서 같이 밴드 활동을 시작할 무렵 '오지 오스본(본명: John Michael Osbourne)'과 베이스 주자 '기저 버틀러(본명: Terence Michael Joseph Butler)'도 '레어 브리드(Rare Breed)'라는 밴드에서 함께 밴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미솔로지와 레어 브리드에서 활동하던 네 사람은 오지 오스본이 애스톤에서 운영하던 악보 전문점 오지 지그(Ozzy Zig)에서 자주 어울렸는데 결국 서로의 음악적 견해가 비슷함을 발견한 네 사람은 1968년 8월에 '폴카 털크 블루스 컴퍼니(The Polka Tulk Blues Company)'라는 긴 이름의 새로운 블루스 록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이 긴 이름은 이후 짧게 '폴카 털크(Polka Tulka)'로 바뀌었다가 9월에 애스톤 지역의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부터 '어스(Earth)'로 바뀌게 된다.


애스톤 지역 클럽에서 활동하던 어스는 연주 경험을 쌓고 활동 반경도 넓혀 나가기 위해 덴마크와 독일로 연주 여행을 떠나 소규모 단위의 순회 공연을 통해 팬들과 직접 만나며 실력을 키워 나가게 된다. 1969년이 되면서 제스로 툴에서의 생활을 완전히 정리한 토니 아이오미와 어스 멤버들은 영국으로 돌아와 그해 11월에 블랙 사바스 라는 이름으로 필립스 음반사(Phillips Records)와 음반 계약을 하고 1970년에 필립스 산하의 버티고(Vertigo) 레이블에서 데뷔 음반 'Black Sabbath'를 발표하게 된다.

어스가 블랙 사바스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은 당시 애스톤 지역에서 어스라는 같은 이름으로 활동하던 밴드가 먼저 싱글 음반을 발매했기 때문이었다. 어스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밴드는 어쩔 수 없이 1963년에 보리스 칼로프(Boris Karloff)가 출연한 공포 영화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와서 밴드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1970년 2월 13일 금요일에 발표된 블랙 사바스의 데뷔 음반은 15세기에 지어져 밀가루를 생산하던 메이플더럼 물레방앗간(Mapledurham Watermill)을 배경으로 검은 드레스 차림의 여성을 표지에 등장시키고 있는데 왠지 모를 음산함과 귀기가 느껴지는 여인의 모습에서 블랙 사바스가 이제 부터 들려 줄 음악이 예사롭지 않을 것임을 미리 짐작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빗소리로 시작하는 음반의 타이틀 곡 'Black Sabbath'에서 부터 밴드는 강력한 흑마술에 대한 이야기를 암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들려주고 있다. 

기저 버틀러와 오지 오스본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이 곡의 배경에는 마법서가 존재하고 있다. 어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어느 날 오지 오스본은 마법이 적혀 있는 서적을 기저 버틀러에게 읽어 보라며 전해 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침대 머리 맡에 사탄의 사진과 거꾸로 된 십자가를 붙여 놓고 있던 기저 버틀러는 오지 오스본이 준 책을 읽다가 책장에 책을 넣어 두고 잠이 들었는데 잠에서 깰 무렵 자신의 발치에 서있는 커다란 검은 그림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화들짝 놀란 기저 버틀러가 침대에서 일어나자 잠시 전까지 서 있던 검은 그림자는 거짓말 처럼 사라져 버렸다고 하며 오지 오스본이 준 책도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책을 찾으러 갔던 오지 오스본은 기저 버틀러로 부터 이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흑마술에 관한 곡을 만들게 되는데 그 곡이 바로 음반의 타이틀 곡인 'Black Sabbath'이다.

첫번째 곡에 이어지는 두번째 곡 'The Wizard' 역시 마법에 관한 곡으로 오지 오스본의 하모니카 연주로 곡을 여는 곡이다.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 등장하는 마법사인 간달프(Gandalf)에게서 착상하여 만들어진 이 곡에서 둔중하게 울려퍼지는 토니 아이오미의 단순하지만 무거운 기타 연주는 헤비메탈이 걸어가야 할 길을 미리 보여 주고 있다.

처음 곡을 만들때 제목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었다는 'N.I.B.'는 악마인 루시퍼(Lucifer)의 이야기를 주제로 만들어진 곡이다. 루시퍼는 루시엘 대천사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악마로 변신한 모습인데 음악 역시 그에 어울리는 우울한 분위기를 포함하고 있다. 'N.I.B.'라는 제목은 빌 워드의 펜촉(nib) 같은 수염에서 착안하여 붙여진 것으로 원래는 제목을 'Nib'로 하려고 했다가 최종적으로 'N.I.B.'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이 제목이 'Nativity in Black'의 약자라는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미국의 블루스 록 밴드 '크로우(Crow)'가 1969년에 발표한 곡을 커버한 'Evil Woman'은 전체적으로 출렁이는 리듬이 특징인 블루스적인 곡이며 음반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10분 짜리 대곡 'Warning' 역시 블루스에 기반한 무거운 록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곡으로 토니 아이오미의 기타 연주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곡이기도 하다.

블랙 사바스가 1970년에 발표한 데뷔 음반 'Black Sabbath'는 록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음반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당시 전성기로 치달아가고 있던 프로그레시브 록에 대항하여 헤비메탈 음악으로 강력하게 제동을 건 음반이기 때문이다. 블랙 사바스의 이 음반으로 인해 영국의 록 음악계를 지배하고 있던 프로그레시브 록은 헤비메탈 음악에 자신들의 자리를 조금씩 양보해야 했으며 결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은 헤비메탈이라는 강력한 상대와 경쟁 관계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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