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16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000001.jpg

 필자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 몇 년전 고시생 시절이다. 그 때 나는 고시를 준비한다고 한참 빡빡하게 살고 있었는데 아침 9시에 학원을 갔다가 저녁 10시 좀 넘어 기진맥진한 채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이 짓을 한 2년동안 했는데 한 때는 우울증이 도질 지경까지 갔었다. 이런 내게 있어 유일한 하루의 낙은 자취방 밑 고깃집에서 세워놓은 아이유 입간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빠왔다! 하고 인사하는 거였다. 아이유 머리를 어찌나 많이 쓰다듬었던지 나중엔 간판 만지지 마세요!라는 경고문이 덩그러니 아이유 가슴팍에 붙여져 있었다. 나는 그냥 머리만 쓰다듬었을 뿐인데.......  


 이렇게 팍팍한 생활이 반복되다보면 사람이 입간판을 어루만지면서 혼잣말을 하거나 힘든 현실을 도피하고자 점점 뇌내망상에 빠지게 되는데 나같은 경우엔 우렁각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자주 하곤 했었다. 힘든 발걸음을 떼며 집에 돌아오면 우렁각시가 따뜻하게 맞아주고 밥도 차려주고 목욕물도 데워주고 말동무도 해주고. 망상은 점점 나를 잡아먹기 시작해 언제부턴가는 강사의 얼굴을 보며 집에 가면 우렁각시랑 뭐할까 히히 이런 쓸데없는 망상만 꾸준히 했었다.

물론 그 결과 나는 시원하게 고시에서 떨어졌다!

 

 한동안 했던 우렁각시 망상도 지겨워지니까 그 대상은 확대되고 변이되어 오 나의 여신님에 나오는 베르단디로 옮겨졌는데 이 캐릭터가 살펴보면 모든 남자들이 좋아하는 그 모든 요소의 집약체다. 예쁘지, 착하지, 몸매도 착하지. 요리 잘하지, 청소 잘하지, 무엇보다 나밖에 모르지. 고시생활 내내 내 이상형은 베르단디였다.

 

 오 나의 여신님은 후지시마 코스케가 1988년에 월간 애프터 눈이라는 일본 만화잡지에 연재했다. 20년도 훨씬 넘게 연재된 초장기작이다 보니 독자들도 그만큼 나이를 먹어 삼촌뻘 되는 중년 독자들도 많다.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로는 우리나라에서 92년도 코엑스 전자전에서 베르단디 프린트를 나눠주었던 청년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분은 지금쯤 쉰을 바라보는 나이겠다! 팬들도 나이를 먹어가는데 결말은 안 보이던 이 작품은 결국2014년에야 완결이 났다.

 

 주인공인 케이이치는 소위 말하는 루저다. 내세울 것 하나 없고,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공대생이다 보니 이성과는 그 어떤 인연도 생길 수가 없었다. 학교의 퀸카에게 고백했다가 시원하게 차이고 돌아오던 어느 날 전화를 걸다가 우연히 구원여신사무소에 연결이 되어 1급 여신인 베르단디가 공대 기숙사에 찾아오게 되는데,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여신의 말에 케이이치는 짓궂은 공대 선배들이 또 장난친 줄 알고 너같 은 여신이 계속 있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게 되는데 이 소원으로 베르단디는 케이이치와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후에 베르단디의 자매인 울드, 스쿨드가 합류하게 되며 케이이치는 한 집에서 개성만점의 세 자매 여신과 같이 지내면서 벌어지는 일상 로코물(하렘물)이 바로 오 나의 여신님의 주요 스토리다. 

 

 이 만화는 하렘물로써는 특이하게 메카의 리얼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극중 배경이 주로 남자주인공 케이이치의 모교인 공대다 보니 자체 제작한 오토바이로 레이싱을 한다던지 자동차를 수리한다던지 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온 몸이 기계인 종족 머쉬너즈도 나오며 심지어 이 만화 주역 중 하나인 막내 여신인 스쿨드는 기계를 좋아하는 공대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천사들이 사는 천계도 체계적인 메카니즘 구조다. 작가 후지시마 코스케의 취미가 자동차와 오토바이라고 하니까 이런 묘사가 많은 거 같다. 가끔 이 만화가 연애만화인지 공대만화라는 좀 아리송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공대나온 주변 친구들은 이 만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역시 이 작품의 포인트는 역시 남자주인공 케이이치에 대한 (남자)독자들의 감정이입이다. 완벽한 미모에 집안일도 잘하고 부족한 게 없는 여자가 일편단심 초라한 나만 바라본다. 대리만족과 더불어 우린 남자주000002.jpg인공인 케이이치에서 스스로를 투영할 수 있다. 키도 작고 잘생기지도 않고 돈도 많지 않고 내세울 게 없는 평범한 나지만 이런 나조차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나 또한 어설프고 서투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때론 과감하지 못한 케이이치의 연애진도에 독자들은 때로는 열 받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에 만화 속으로나마 또다른 나 케이이치가 잘되길 응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만화는 26년간 인기를 끌었던 거고.

 

천사랑 인간이 사랑하는 만화니까 나중에는 악마도 나오고 하느님도 나오고 일상 연애물이었던 이 만화의 판은 점점 커지게 된다. 극중 후반부에 케이이치는 베르단디를 좋아하지만 그녀와 이어지기에는 인간이기에 어떤 제약이 걸려있게 된 걸 알게 된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 중에서도 루저인 그는 예비장인인 하느님에게 딸을 주십쇼! 라고 용기있게 말하고 결국 그 조건으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오토바이 레이스를 하게 된다. 목적지는 그녀가 서 있는 곳. 목숨을 걸고 수많은 난코스를 베르단디를 향한 순수한 일념과 약간의 도움 덕분에 완주에 성공하게 되고 둘은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을 하며 이 만화는 완결이 난다. 26년간 끝이 보이지 않았던 이 만화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장면은 연재 맨 처음에 나왔던, 오 나의 여신님을 대표하는 명대사로 완벽하게 끝난다! 정말 멋진 마지막 장면이다.

 

 당신같은 여신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어!

 

 자신의 외적인 조건 때문에 연애를 포기하는 남자들이 있는데 조금만 용기를 갖고 힘냈으면 좋겠다. 당신의 매력은 외적인 조건만으로 결정되지는 않아. 당신은 눈에 보이는 그 이상으로 더 멋진 남자야! 그리고 보잘것없는 우리네 평범한 일상에서도 나만의 여신이 나타날 언젠가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케이이치가 그랬던 것처럼 용기를 내서 운명의 여신을 보는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보자. 비록 그것이 어설프고 서투르더라도


  1. 수요일 만화를 보는 소년 - 사랑의 천사 웨딩 피치

    마법 소녀 물은 요새 유행하는 히어로 물이랑 흡사한데 소녀들이 주인공인 장르다. 남들이 로봇 물 볼 때 혼자 마법소녀 물을 보던 나의 은밀한 취미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캐치 유~ 캐치 유~ 캐치 미~ 캐치 미~” 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카드캡터 체리 O...
    Date2015.05.20 By호솜 Views1627
    Read More
  2. 수요일 만화를 보는 소년 - 꾸러기 수비대

    여유로운 주말 오후, 후배 하나를 꼬셔서 동네카페에서 같이 공부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 책을 펴놓기만 하고 나는 계속 딴 짓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근면, 성실의 아이콘인 후배는 역시나 착실하게 대기업 인적성 시험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문득 낮게 중얼...
    Date2015.06.10 By호솜 Views1841
    Read More
  3. 수요일 : 만화를 보는 소년(만보소) - 사이버포뮬러

    [수요일 : 만화를 보는 소년(만보소) - 사이버포뮬러] 독자들에게 좀 더 생생한 정보와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일념 하나로, 168은 몇 주전 새 지면 화보 촬영을 위해 충청도에 갔다. 촬영지가 멀리 떨어져 있는 당일취재여서 아침 7시부터 모여서 촬영하러 ...
    Date2015.06.21 By홍홍 Views1059
    Read More
  4. 수요일 : 만화를 보는 소년 (만보소) - 태양의 기사 피코

    ?나는 태양의 기사 피코를 좋아한다. RPG 게임을 만화로 옮긴 듯 방대한 세계관. 또, 파티를 맺은 용사 일행이 적과 싸우면서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든다. 운송수단으로 쓰는 메카도 흔히 나오는 차나 비행기가 아니라 성(城)이다. 메카용 성의 모...
    Date2015.05.26 ByJYC Views1417
    Read More
  5. 수요일 - 만화를 보는 소년 : 오 나의 여신님

    필자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 몇 년전 고시생 시절이다. 그 때 나는 고시를 준비한다고 한참 빡빡하게 살고 있었는데 아침 9시에 학원을 갔다가 저녁 10시 좀 넘어 기진맥진한 채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이 짓을 한 2년동안 했는데 한 때는 우...
    Date2015.06.23 By호솜 Views1162
    Read More
  6. 수요일 - 만화를 보는 소년 (만보소) : 요리왕 비룡

    [수요일 - 만화를 보는 소년(만보소) : 요리왕 비룡] 168모토는 병신미. 좋은 공연, 좋은 물건, 아름다운 문법으로 새롭게 풀어내는 아름다움이다. 다른 에디터들은 팝이나 요리, 문학, 고전게임 리뷰를 심도 있게 풀어내니 (적어도 내 눈에) 이 분들은 상당히...
    Date2015.06.03 By홍홍 Views2103
    Read More
  7.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chapter 1. 봄은 마음에서부터 온다. 봄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 평범한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간단하다. 남쪽에서부터 온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대구에서는 다른 도시의 봄소식을 전해 들어야 한다. 다른 이들이 먼저 ...
    Date2016.04.21 By호솜 Views1190
    Read More
  8. 목요일 홍혜원 주관 : 고전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앤비

    [홍혜원주관 - 고전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앤비] 씁쓸하다. 저기 고전게임 뒤에 붙은 물음표가 보이시는지. 초등학교때부터 함께 한 '크아'가 고전이라니. 새삼 나이가 하하. 뭐 내 나이가 어때애서어~ 아직 팔팔하니 괜찮겠지. 단지 이 게임이 출시된지 ...
    Date2015.05.28 By홍홍 Views1271
    Read More
  9. 목요일 조용찬주관 : 고전게임 리뷰 - 삼국지 5-

    ? <조용찬 주관 : 고전게임 리뷰 -삼국지 5-> - 코에이에서 제작한 삼국지 시리즈의 5번째 작품. - 1985년 첫 작품이 발표된 이후 어느덧 30년째를 맞이했다. 현재 13편의 발매일이 올해 12월 10일로 발표되었다. 삼국지 하나로 30년을 우려먹다니, 중국인들 ...
    Date2015.05.22 By홍홍 Views1136
    Read More
  10. 목요일 조용찬 주관 : 고전게임 다시보기 - 포가튼사가

    - 1997년 발매된 손노리의 SRPG 게임. 손노리는 포가튼사가 이전에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이하 '어스토')와 다크사이드 스토리를, 이후에는 화이트데이를 발매한 국내 굴지의 게임회사로, 나머지 게임들은 몰라도 '화이트데이'라고 하면 다들 알듯하다. - 80...
    Date2015.06.05 ByJYC Views1746
    Read More
  11. 목요일 고전게임 다시보기 : 메가맨(록맨) X1 (2)

    ? - 국내에선 기존 록맨 시리즈가 아닌 X1으로 록맨을 처음 접한 유저가 많아서, 기존 록맨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흔하다. ? - 록맨 시리즈의 후속이지만 X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어둡고 찜찜하다. 단순히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내용의 기존 시리...
    Date2015.07.11 ByJYC Views1688
    Read More
  12. 목요일 : 조용찬 주관 날아라 슈퍼보드 - 환상서유기

    [조용찬 주관 : 날아라 슈퍼보드 - 환상서유기] - 1998년 발매된 국산 대작 RPG. 제목 그대로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요 캐릭터들을 차용하여 새로운 스토리를 구현했다. 당연히 손오공, 삼장법사, 저팔계, 사오정 등이 나오며, 애니메이션과의 교...
    Date2015.06.22 By홍홍 Views957
    Read More
  13. 목요일 : 고전게임 다시보기 - 캐딜락 & 다이너소어

    -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캡콤의 횡스크롤 액션 아케이드 게임. 애니메이션도 원작이 따로 있는데, 마크 슐츠의 '제노조익 테일즈'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걸맞게 순화+미화한 것이 캐딜락 & 다이너소어 였다. - '캐딜락 & 디노사우르'라...
    Date2015.06.12 ByJYC Views1777
    Read More
  14. 목요일 - 선곡표2 '2015년이 가기 전 놓치지 말아야 할 음반들(1)'

    목요일 - 선곡표2 '2015년이 가기 전 놓치지 말아야 할 음반들(1)' 0.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을미년의 12월에 당도했다. 이제 곧 매년 이맘때 느끼는 지난해에 대한 반성과 다가올 새해에 대한 부담감이 스멀스멀 몰려들어 혈이 막힌 듯한 심정을 느끼...
    Date2015.12.03 By호솜 Views547
    Read More
  15. 목요일 - 고전게임 다시보기 '메가맨X'

    [조용찬 주관 : 고전게임 리뷰 - 록맨(메가맨) X1 (1)] ? ? ? ? <오프닝 화면> ? ? - 1987년 '록맨'이라는 이름으로 최초 발매된 후 기존의 록맨 시리즈에서 세분화되어 발매된 X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X 시리즈의 이름으로는 8개의 작품이 나왔지만 첫 작품...
    Date2015.06.25 ByJYC Views1117
    Read More
  16. 만화를 보는 소년 ? 검정고무신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 쯤 몹쓸 장난을 쳐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비가 온 다음날 집 앞 놀이터에서 삽으로 거대한 구덩이를 파고 그 위를 신문지와 구덩이를 판 모래로 덮어 기가 막힌 함정을 만든 다음 숨어서 누군가가 걸려드는 것을 지켜봤던...
    Date2015.11.24 By호솜 Views1894
    Read More
  17. 만화를 보는 소년 - 월레스와 그로밋

    만화를 보는 소년_월레스와 그로밋 ※멍덕 주의 만화 속 캐릭터 중 가장 키우고 싶은 동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월레스와 그로밋]의 강아지 그로밋이 아닐까? 수수하지만 귀여운 외모와 다재다능함에 주인을 향한 충성까지 뭐하나 빠질 데가 없는 그로밋은 ...
    Date2015.12.01 By호솜 Views2687
    Read More
  18. 두괴즐의 빠돌이즘: 1부 3화 소떼 속의 <필승>

    [두괴즐의 빠돌이즘] 1부 서태지, 3화: 소떼 속의 <필승> 다들 수학여행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많은 경우 이 여행에서 처음 술을 접하거나 혹은 선생님이 손수 건네는 술을 먹어보기 때문에, 술에 대한 기억으로 수학여행을 회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Date2013.04.30 By두괴즐 Views2967
    Read More
  19. 두괴즐의 빠돌이즘: 1부 2화 악마 서태지 vs 기독교 신앙 (슬픈아픔)

    <1부 2화 악마 서태지 vs 기독교 신앙> 2000년 서태지가 컴백한 후, 두 집단에서 그에 대한 증오와 경계를 표출했습니다. 한 꼭지는 인디신에서의 반응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수적 기독교에서의 반응이었습니다. 이번화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후자에 ...
    Date2013.03.05 By두괴즐 Views4507
    Read More
  20. 두괴즐의 빠돌이즘, 서태지 편: 6화 폭로와 냉소 <대경성>

    [두괴즐의 빠돌이즘] 서태지 편: 6화 폭로와 냉소 <대경성> "도대체 정직한 듯한 정책 무가책 뒤를 쳤던 네 술책 너를 문책해도 결국 중책 맡은 자만 죄다 면책 " 서태지의 음악을 통해 세계를 의심하는 법을 배웠고, 그것은 폭로와 공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Date2013.08.05 By두괴즐 Views245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 7 Next
/ 7

로그인 정보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