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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 몇 년전 고시생 시절이다. 그 때 나는 고시를 준비한다고 한참 빡빡하게 살고 있었는데 아침 9시에 학원을 갔다가 저녁 10시 좀 넘어 기진맥진한 채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이 짓을 한 2년동안 했는데 한 때는 우울증이 도질 지경까지 갔었다. 이런 내게 있어 유일한 하루의 낙은 자취방 밑 고깃집에서 세워놓은 아이유 입간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빠왔다! 하고 인사하는 거였다. 아이유 머리를 어찌나 많이 쓰다듬었던지 나중엔 간판 만지지 마세요!라는 경고문이 덩그러니 아이유 가슴팍에 붙여져 있었다. 나는 그냥 머리만 쓰다듬었을 뿐인데.......  


 이렇게 팍팍한 생활이 반복되다보면 사람이 입간판을 어루만지면서 혼잣말을 하거나 힘든 현실을 도피하고자 점점 뇌내망상에 빠지게 되는데 나같은 경우엔 우렁각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자주 하곤 했었다. 힘든 발걸음을 떼며 집에 돌아오면 우렁각시가 따뜻하게 맞아주고 밥도 차려주고 목욕물도 데워주고 말동무도 해주고. 망상은 점점 나를 잡아먹기 시작해 언제부턴가는 강사의 얼굴을 보며 집에 가면 우렁각시랑 뭐할까 히히 이런 쓸데없는 망상만 꾸준히 했었다.

물론 그 결과 나는 시원하게 고시에서 떨어졌다!

 

 한동안 했던 우렁각시 망상도 지겨워지니까 그 대상은 확대되고 변이되어 오 나의 여신님에 나오는 베르단디로 옮겨졌는데 이 캐릭터가 살펴보면 모든 남자들이 좋아하는 그 모든 요소의 집약체다. 예쁘지, 착하지, 몸매도 착하지. 요리 잘하지, 청소 잘하지, 무엇보다 나밖에 모르지. 고시생활 내내 내 이상형은 베르단디였다.

 

 오 나의 여신님은 후지시마 코스케가 1988년에 월간 애프터 눈이라는 일본 만화잡지에 연재했다. 20년도 훨씬 넘게 연재된 초장기작이다 보니 독자들도 그만큼 나이를 먹어 삼촌뻘 되는 중년 독자들도 많다.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로는 우리나라에서 92년도 코엑스 전자전에서 베르단디 프린트를 나눠주었던 청년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분은 지금쯤 쉰을 바라보는 나이겠다! 팬들도 나이를 먹어가는데 결말은 안 보이던 이 작품은 결국2014년에야 완결이 났다.

 

 주인공인 케이이치는 소위 말하는 루저다. 내세울 것 하나 없고,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공대생이다 보니 이성과는 그 어떤 인연도 생길 수가 없었다. 학교의 퀸카에게 고백했다가 시원하게 차이고 돌아오던 어느 날 전화를 걸다가 우연히 구원여신사무소에 연결이 되어 1급 여신인 베르단디가 공대 기숙사에 찾아오게 되는데,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여신의 말에 케이이치는 짓궂은 공대 선배들이 또 장난친 줄 알고 너같 은 여신이 계속 있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게 되는데 이 소원으로 베르단디는 케이이치와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후에 베르단디의 자매인 울드, 스쿨드가 합류하게 되며 케이이치는 한 집에서 개성만점의 세 자매 여신과 같이 지내면서 벌어지는 일상 로코물(하렘물)이 바로 오 나의 여신님의 주요 스토리다. 

 

 이 만화는 하렘물로써는 특이하게 메카의 리얼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극중 배경이 주로 남자주인공 케이이치의 모교인 공대다 보니 자체 제작한 오토바이로 레이싱을 한다던지 자동차를 수리한다던지 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온 몸이 기계인 종족 머쉬너즈도 나오며 심지어 이 만화 주역 중 하나인 막내 여신인 스쿨드는 기계를 좋아하는 공대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천사들이 사는 천계도 체계적인 메카니즘 구조다. 작가 후지시마 코스케의 취미가 자동차와 오토바이라고 하니까 이런 묘사가 많은 거 같다. 가끔 이 만화가 연애만화인지 공대만화라는 좀 아리송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공대나온 주변 친구들은 이 만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역시 이 작품의 포인트는 역시 남자주인공 케이이치에 대한 (남자)독자들의 감정이입이다. 완벽한 미모에 집안일도 잘하고 부족한 게 없는 여자가 일편단심 초라한 나만 바라본다. 대리만족과 더불어 우린 남자주000002.jpg인공인 케이이치에서 스스로를 투영할 수 있다. 키도 작고 잘생기지도 않고 돈도 많지 않고 내세울 게 없는 평범한 나지만 이런 나조차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나 또한 어설프고 서투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때론 과감하지 못한 케이이치의 연애진도에 독자들은 때로는 열 받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에 만화 속으로나마 또다른 나 케이이치가 잘되길 응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만화는 26년간 인기를 끌었던 거고.

 

천사랑 인간이 사랑하는 만화니까 나중에는 악마도 나오고 하느님도 나오고 일상 연애물이었던 이 만화의 판은 점점 커지게 된다. 극중 후반부에 케이이치는 베르단디를 좋아하지만 그녀와 이어지기에는 인간이기에 어떤 제약이 걸려있게 된 걸 알게 된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 중에서도 루저인 그는 예비장인인 하느님에게 딸을 주십쇼! 라고 용기있게 말하고 결국 그 조건으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오토바이 레이스를 하게 된다. 목적지는 그녀가 서 있는 곳. 목숨을 걸고 수많은 난코스를 베르단디를 향한 순수한 일념과 약간의 도움 덕분에 완주에 성공하게 되고 둘은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을 하며 이 만화는 완결이 난다. 26년간 끝이 보이지 않았던 이 만화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장면은 연재 맨 처음에 나왔던, 오 나의 여신님을 대표하는 명대사로 완벽하게 끝난다! 정말 멋진 마지막 장면이다.

 

 당신같은 여신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어!

 

 자신의 외적인 조건 때문에 연애를 포기하는 남자들이 있는데 조금만 용기를 갖고 힘냈으면 좋겠다. 당신의 매력은 외적인 조건만으로 결정되지는 않아. 당신은 눈에 보이는 그 이상으로 더 멋진 남자야! 그리고 보잘것없는 우리네 평범한 일상에서도 나만의 여신이 나타날 언젠가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케이이치가 그랬던 것처럼 용기를 내서 운명의 여신을 보는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보자. 비록 그것이 어설프고 서투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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