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
‘관객모독’
의자 네 개가 무슨 관객을 모독하냐고?
코웃음 치는 순간, 큰코 다친다.
#Prologue
의자 네 개가 무슨 관객을 모독한다고. 무대 위 덩그러니 놓여있는 의자 네 개는 모독당할 마음 굳건히 먹고 온 관객들을 힘 빠지게 만든다. 하지만 코웃음 치며 들어갔다가는 큰 코 다치고 나오게 될 것이다. 이 연극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연극과는 크게 다르다. “여러분들이 일찍이 듣지 못했던 걸 여기서 듣게 되리란 기대는 마십시오. 또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지도 않을 겁니다.” 배우들은 극이 막에 오르기 전에 관객들에게 선포를 날린다. 긴장했나? 아직은 이르다. 이 선포가 시작에 불과하니까.
Q. 관객모독이 도대체 어떤 공연인지 힌트 좀 줄 수 없나.
A. (배우들) 관객 모독은 관객 모독이다. 음 굳이 말하자면 언어연극? 보면 안다.
#Scene1. 목표 : 관객 놀래 키기
암전을 기대하던 관객들은 환한 빛을 마주하게 된다. 극장이고 막이 올랐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 위는 없다. 오히려 객석 쪽이 더욱 밝다. 이게 무언가 하고 어리둥절해 있는 관객들에게 날아오는 것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이다. 6개 국어를 시작으로 단어를 이상하게 끊어 읽고 심지어는 수화를 하기도 한다. 이 상황에서 배우들은 대사로 돌림노래를 만든다. 그렇게 관객들의 혼을 쏙 빼앗아 가 놓고도 그들은 부족한가보다. 여전히 극을 시작할 준비가 안 되었다고 아니, 관객들은 극을 볼 준비가 안 되었다고 비난한다. 이쯤 되면 그들이 보여줄 ‘진짜’ 극이 무언지 더욱 기대가 된다. 알 수 없는 대사 안에서도 시종일관 웃음을 지울 수 없는 건 이 기대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
Q. 엄청 나게 많은 대사들, 소화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A. 배우 최영환(이하 최) - 사실 대사 외우는 것은 배우의 숙명 아니겠나. 어렵긴 하지만 동선 맞추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들다.
Q. 소품이 의자뿐이다. 배우가 극의 흐름을 모두 책임지는데 무대에 서면서 부담되는 건 없는지.
A. 배우 이철은(이하 이) -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공연에 직접 서보니 볼 때는 몰랐던 부분들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 관객과 직접 대면하면서 크다. 매일 다양한 관객 분들이 객석을 채워주시다 보니 각기 다른 분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나가야 한다. 어려우면서도 배우로서 많이 배울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Scene2. 두 얼굴의 배우. 두 얼굴의 무대
이제야 극이 좀 시작되나 보다 싶었다. 이게 웬걸. 공연은커녕 배우들은 이제 “여러분”에서 “너희들”로 호칭을 바꾼다. 진짜 모독을 시작하다보다. 촌철 같은 그들의 일침은 객석을 향한 외침으로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감춘 채 무대를 바라보기만 했던 관객들을 호통 친다. 꾸짖음 같은 그 호통에는 오히려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염원이 절절하다. 그들이 바라는 연극과 관객들의 모습을 외치면서 관객 모독은 ‘진짜’ 연극의 청사진을 들려준다.
사실 한편으로는 그들의 모독이 기분 좋기도 하다. 그 안에는 우리 사회에서 꼬집어 주고 싶은 면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속 시원히 털어 재끼기도 힘든 요즘에 우리끼리 옹기종기 모여 얘기하는 기분이랄까. 말 못하는 우리 대신 이야기를 해주니 끝난 뒤에는 속이 시원할 정도다. 물론 초기에는 오해하는 관객들이 무대로 의자를 던지기도 했다고.
Q. 지금은 무대로 날아오는 것들이 없는지?
A. 배우 기주봉(이하 기) - 지금도 작품을 하다보면 도중에 물풍선, 사탕, 고추 등 소소한 것들이 날아오고는 한다. 그렇지만 관객들이 악의를 가지고 던졌을까 (웃음) 그 것이 아님을 알기에 오히려 기분 좋다.
이 - 아직까지 무엇을 맞아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즐겁게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 (웃음) 무엇을 던지건 간에 던졌다는 건 우리가 관객과 소통을 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나.
Q. 극 중 즉흥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많다. 돌발 상황이 벌어진 적은 없는지.
A. 배우 박선애(이하 박) - 큰 일이 벌어진 적은 다행히 없다. 하지만 가끔 입맞춤을 연기하는 장면에서 남성 관객분이 피하는 느낌이 없어 오히려 당황한 적은 있다. 보다 안전한(?) 연기를 위해 여자 친구 분과 함께 오신 남성 관객을 선택하고는 한다. (웃음)
최 - 가끔 여성 관객분이 남자 친구를 무대로 못 나가게 붙잡기도 한다. 남성 분은 나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여자 친구가 팔을 꽉 잡고 안 놔주는 경우도 보았다.
#Epilogue
Q. 사실상 쉬운 연극은 아니다. 언어연극이라는 형태가 관객에게 생소할 수도 있는데 ‘관객모독’, 어떻게 해야 재밌게 볼 수 있을까.
A. 기 -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사 중에 ‘너니 나니?’라는 말이 있다. 배우들과 관객들 모두 똑같은 입장, 마음으로 친해지자는 의미다.
최 - 욕 파티를 하든, 무엇이든 그저 관객들과 파티를 하고 싶다. 관객 모독에서는 관객들에게 같이 놀자고 손을 내민다. 그 손을 관객 분들이 내치지 않고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90분 동안 실컷 말하면서 땀을 흘리고도 관객들이랑 계속 놀고 싶다고 투정부리는 이들이다. 그들의 투정을 우리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모독이라니, 억울하면 같이 하면 된다! 관객 모독의 무대에서는 오히려 이를 환영한다. 배우들만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허성수 프로듀서는 앞으로 극에 새로운 게스트를 계속해서 투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는 배우, 가수, 국회의원 등 사회 내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지만 그는 이 범위를 우리 사회 속으로 넓히려 한다. 연극의 주인공 바톤을 ‘우리’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배우와 관객의 경계를 넘어 모두가 함께 속을 시원히 비우고, 같이 즐기는 무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그의 목표란다. 달라도 너무 달라 더욱 눈길이 가는 연극 ‘관객모독’, 새로운 시도들 속에서 배우들이 외친 ‘진짜’ 연극의 청사진을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