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소품집] 어머니의 최근 검색어

by 호솜 posted Jul 3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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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하나 있다. 이 곳 저 곳에서 관심 받지 못하는 여자 하나 있다. 달님이 잠 못 이루는 이들을 달래기도 전에 하루를 시작하고, 쪽잠을 뒤척인 듯 깊게 패인 두 눈으로 거울을 바라보는 여자. 표정 하나 담기지 않는다. 몇 걸음 옮겨 부엌이라고 구분지은 곳을 간다. 물을 한껏 머금어 통통해진 쌀알들로 밥을 안치고, 몇 가지 나물을 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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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꺽꺽 되새김질하는 세면대에서 간단히 씻는다. 그녀가 나서고 난 후에도 세면대에는 하얀 치약거품이 둥둥 떠 있다. 그녀는 얼굴이 다 담기지 않는 작은 거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값싼 화장수를 바른다. 의자에 걸쳐진 거무튀튀한 옷가지를 입고 현관문으로 가려다 이불 사이로 삐져나온 아이들의 발이 보인다. 그녀는 발을 이불속으로 넣어주고서 몇 초간 토끼거나 강아지일 그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것으로 되었다. 이름만 보면 참 고운, 그녀 이름 석 자가 아닌 누구의 엄마로 살아갈 이유가. 그렇게 그녀에게 그녀가 없는 채 또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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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곡 ? 가수 라디의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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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나 드라마, 소설의 단골 소재로 모성애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그럴 때면 내심 내 안에선 반항기 가득 18세가 깨곤 한다. 신경숙 작가의 책 엄마를 부탁해를 누구 못지않게 눈물과 함께 읽어내려 갔지만 나의 어미가 연상되지는 않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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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어미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할까. 그냥 싫어하겠지. 그 질문으로 인해 나의 어미를 떠올려야 하니까. 그녀와 내가 공유한 시간과 사건, 감정을 데이터로 하여 그녀를 분석해야 할 테니까. 미움까진 아닌 텁텁함. 이유 모를 미안함과 안쓰러움. 그러나 그 안쓰러움을 느끼고 싶지 않은 대상. 그러니 그 질문만은 알아서 거두어 주길 바라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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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수년간 써오던 그녀의 휴대전화가 쓸 만큼 썼다며 배를 까뒤집고 죽어버렸다. 그래서 하나 장만해드린 최신형 휴대전화. 거 뭐, 숫자판이 없고 이래 밀기만 하는 거를 뭐라카노? 마이 비싸나? 엄마랑 일 하는 아지매들도 요새 다 그거 쓰대.’ 50대 아주머니들은 전부 갖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하나. 가격을 알려드렸더니 이미 여럿 산 것 마냥 고개를 격하게 저어셨다. 그래도 하나 장만해드렸고, 요금 걱정을 하시면서도 내심 그럴싸한 휴대전화에 기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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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것이 발단이 되어 참으로 괴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한 번은 전화벨소리가 너무 작아서 일 할 때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며 키워 달라, 한 번은 전화벨소리가 너무 요사스럽다고 바꿔 달라, 또 다시 전화벨소리가 너무 커서 버스 안에서 자신의 전화벨소리만 울려댄다고 줄여 달라, 기상알람을 알아서 삭제하기도 수십 번. 그렇게 스마트폰의 자잘한 기능들을 부탁하시는데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혼자 이것저것 만져보며 배우라는 말을 수십 번째 해서가 아니라 내가 없으면 이것들을 못할 생각하니 짜증스러웠다. 이것 하나 부탁하려고 늦은 시각 귀가하는 나를 기다린 것도 짜증스러웠다. 왜 이렇게 어려운 걸로 샀냐며 나를 타박하는 것이 괜스레 나에게 한 마디라도 더 붙여보려는 걸 알면서도 짜증스러웠다. 아니 그것을 알기에 더욱 째지는 소리로 휴대전화를 뺏듯 가져가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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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전화는 중요한 일 아니면 하지 말라하고, ‘까똑괴상한 소리를 내는 이 요물도 돈 드는 게 아닌 지 그냥 없애 달라한다. 친구니 선배니 쉴 틈 없이 울리는 내 휴대전화와 달리 그녀는 가끔 양심에 찔려서 하는 자식들의 연락이 고작 일 텐데 참 답답했다. 밖에서 몇 백 원이 아쉬워 정작 먹고 싶은 것을 마다하는 나는 넘어가도 그녀가 푼돈으로 궁상 부리는 것은 열이 받는다. 그 돈을 아낄 바에 차라리 살림에서 돈을 아낄 것이었다. 집에서 밥을 잘 먹지도 않는 자식들. 그런데도 모든 음식을 꼭 인원수에 맞게 했다. 버리는 게 아깝기도 하고, 그 모습이 마냥 미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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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스마트 폰 때문에 늘어나는 그녀에 대한 짜증이 극에 치달아 갈 때 쯤 우연히 그녀의 휴대전화를 잠시 쓰게 되었다. 인터넷 어플을 키고서 검색을 하려는데 눈에 들어오는 최근 검색어들. 대놓고 퉁명스러운 내 태도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검색하는 것 정도는 깨우친 듯 보였다. 24시간을 온통 나를 중심으로 돌리고 있던 내가 한 순간 그녀의 하루하루들을 엿볼 수 있는, 근 일주일 간 그녀가 찾았던 낱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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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근로자월평균소득 / 토지공사영구임대 / 장기임대아파트 / 골다공증 / 근로장려금 / 잡코리아 / 부추겉절이 / 로또 / 파산신청 / 단기알바 /? 매운la갈비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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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활에서 이 낱말들을 궁금한 적은 없다. 이 낱말만 궁금한 적은 더더욱 없다. 20대인 나와 50대인 그녀 사이에 차이는 있겠지. 그렇다면 내가 50대에 이런 검색목록을 가질 생각을 해본다면? 굳게 닫힌 입이 더욱 굳게 닫혔다. 이렇게 진정으로 정신 차리게 하는 회초리는 무서운 긴장감도, 바람을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도 없이 내려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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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이 있었다. 좋은 것을 보면 함께 한 번 더 보고 싶고, 멋진 옷가지가 레이더망에 들어왔으면 선물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내가 그를 찾아갈 때가 더 빈번했고 내게 있어 무엇보다 그가 우선이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낌없이 주고 싶었던 사람. 그렇지만 무조건적이지는 않았다. 아무런 바람 없이 행했던 나였다면 그렇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주었던 것과 양의 차이는 있더라도 무언가는 받아야 했다. 균형이 맞지 않아도 다른 형태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마치 그가 그것을 줘야만 내가 계속해서 내 마음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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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녀에겐 계산이 없었다. 회초리의 여파로 없던 가족애도 다 고개를 드는 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에겐 계산이 없었다. 학창시절, 그녀를 책망한 날이면 난 내 가슴을 더 내려쳤다. 악에 바쳐 그녀에게 소리를 치고 나면 증오의 화살이 외려 나를 가리키곤 했다. 또한 막둥이로 자란 그녀가 기피하던 집안일들을 어린 나이의 내가 해나갔다. 소위 부모를 위해 행한 행동이라 일컬어 질 수 있는 것들에 있어서 줄자는 필요 없었다. 그저 내가 자라온 시간들 중에 한 부분일 뿐 의심의 반문도, 밑지는 장사라 생각한 적도 없었다. 가끔 무조건적이지 않다 느꼈던 그녀의 사랑에도 나는 무조건적이어야 했던 까닭은 내가 자식이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그녀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도 참 츤데레한 면모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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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에피소드를 추가해본다. 취업의 길을 마다하고 내가 하고 싶던 일이자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두었다. 가세가 많이 기울어가서 번듯한 직장을 다니기를 그녀가 부탁했다. 20대에 열정을 쏟고 싶은 일에 돈과 세월을 투자하는 것은 탕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여유로웠다. 그런데 가족 생각 없이 너무 내 기호만 좇았나. 나는 왜 남에겐 관대하면서 내 가족들에겐 야박했을까. 왜 내게 가족들이 치댄다고 느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내가 가장 억울했던 순간도, 가장 슬펐던 순간도, 가장 기뻤던 순간도, 가장 죽고 싶음과 동시에 가장 살고 싶었던 순간도 그들의 앞이었는데 말이다. 내 방황의 꽃도 그들의 품에서 피었고, 곱게 그 꽃잎을 지워 책장 사이 꽂아준 것도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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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마저 자존심이 강했던 나의 아비와 어미. 그들의 이가 빠지고 머리가 쇠어간다. 머리털이 하얗게, 하얗게 쇠어가다 후 풀면 먼지처럼 날아갈 것만 같다. 가끔 찍어드리는 사진에서 늙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새삼 놀라할 때가 있다. 그런 그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 나는 그 무엇을 이유로 하여 못 본 척 할 수 있을까. 그 까슬까슬한 손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을 가진 게 있긴 할까. 알량한 내 욕심도, 박차를 가하던 내 꿈도 그러진 못했다. 참 야망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그저 조급했던 사람은 아닐까 나 자신도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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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작스럽게 글의 서두에서 꺼냈던 책 엄마를 부탁해이야기를 해보자면, 여느 작품이 그렇듯 이 책도 쓴 소리를 들었다. 현대사회의 변화된 모친상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너무도 지고지순한 시대착오적인 모성애를 그려냈다는 비판. 그런데 자식의 각도에서 어미를 대상으로 쓴 소설이라면 이는 당연한 결과지 않을까. 자식들은 자신의 부모를 이따금 각색하는 것을 즐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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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스스로가 멋진 사람이 되기보다 자신의 상황을 더욱 불우하게 만들 때가 있다. 합리화의 일종이다. 합리화라는 것이 그러하듯 이 또한 참 못났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애잔하다. 내 생활을 불우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무난한 소재는 부모이다. 부모 자체를 각색하는 것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내게 닥쳤던 사실들을 더욱 치욕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행한 사람들의 태반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 정작 자신인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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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나를 불우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나의 가정환경을 요긴하게 써먹었다. 머리를 약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때부터 최근까지도 그 나쁜 습성은 이어지고 있다. 성장담을 보다 자극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을 살려 쓸 때도 있다. 그런데 그것들로 하여 딱히 삐뚤어진 적도 없고 나의 표현들이 예측하게 해주는 상처들을 오롯이 받지도 않았다. 이것도 애정결핍의 한 양상이라고 자체진단을 내렸다.


? 이렇듯 각색에 일가견이 있는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성애라는 낱말에 심드렁한 태도가 바뀌진 않는다. 대게의 자식들이 그러하듯 그녀의 휴대전화 검색어에 맞은 회초리의 효과는 길어야 며칠. 나는 엄마라는 단어 하나에 울음을 쏟을 순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귀찮고, 내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두어 번씩 꺼내어 원망할 존재이다. 나는 치료가 필요한 이 상태로 계속 살아가며 이로 인해 해야 할 후회라면 할 것이고, 성장할 감정이라면 성장할 것이다. 다만 그녀가 여전히 어린 자식에게 너무 짧은 기회를 주시지 않았으면, 감당하기 힘든 후회를 남겨 주시지만은 마셨으면 한다.


?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아픈 사람. 지나온 감정이자 현재에도 유효한, 훗날 그녀 없이 이 삶을 지탱해야 할 때에는 더욱 짙어질 그것. 그녀를 향한 사랑. 다소 어그러진 모습이지만 성장이라는 사포로 깎아가려고 한다. 오늘 저녁으로 자작하게 끓인 된장찌개가 이젠 얼추 흉내를 잘 낸 것도 같은데, 그녀의 그 국물이 그립기만 하다. 찌개를 움푹 퍼 밥에 비빈다. 퍽퍽한 밥이 퍽퍽한 마음으로 넘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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