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우지웅(채널168 섹스 칼럼니스트)
내가 노래방에 가면, 여자들 앞에서 ‘취중진담’을
부르지 못하는 이유가 있지.
단순히 노래를 못 불러서가 아니야.
아주 오랜만에 낮선(?) 여성들과 함께 술자리를 할 기회가 생겼다.
남자들에게 있어 처음 보는 여자와의 술자리는 언제나 설레기 마련. 부푼 기대와 꿈을 안고 술잔을 기울인다. 함께 동행 했던 일행들도 필시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고,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모두 공감하기에 부끄러움은 없다.
오늘 밤 함께 술친구가 되어 줄, 혹은 그 이상의 사이로 발전할지도 모를 내 앞에 앉아있는 여성들을 곁눈질로 훔쳐본다.
모두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한명에게만 내 시선이 끌리는 것은 어쩔 수 가 없다.
그러나 세상일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 남녀관계라고.
내 마음을 훔쳐간 그녀는 일행 중 나의 선배에게 마음을 뺏긴 눈치이다. 두 사람 사이에 많은 대화가 오고갔고, 내가 듣기에는 당장 일어나 그 선배의 뺨을 후려치고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야한 농담이 몇 번을 오고갔다.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해 착한 위선자의 모습을 보이는 그녀의 고운 마음씨를 보고 나는 감복... 하기는 커녕 너무 배가 아팠고 자존심에 생긴 스크래치를 감추고자 그녀 옆의 다른 여인에게 관심을 쏟았다.
내 위선적인 관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와 나의 분위기는 꽤나 좋았다. 아니,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고 어느 정도 취기도 올랐겠다, 지금 내 앞에서 시시하고 소소한 대화를 나눠주는 그녀 덕에 처음에 시선을 빼앗아간 그녀는 더 이상 나의 눈요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다.
여자사람과 이렇게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얼마만인가. 또한 여자 친구라는 것의 존재감을 잊은 채로 살아 온지가 꽤나 오랜 된지라, 그녀에게서 느끼는 이 묘한 감정이 익숙하지 않다.
술자리 막바지에 받은 그녀의 전화번호를 붙잡고, 샘솟는 자신감을 참아가며 헤어진 뒤 쿨 하게 그녀에게 따로 만나 한 잔 더 하겠냐며 연락을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답장을 기다렸으나,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그녀의 연락에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실망감을 감출 길이 없다.
집에 도착했다는데 왜 그리 아쉬운 것 인지... 무사히 도착했다는데...
밤새 마셨던 술이 깨면서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당장 그녀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일말의 감정도 남지 않았다.
왠지 오늘밤이 아니면 만나고 싶지 않다. 아니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예전에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드는 생각은 내 눈이 꽤나 높다는 것이다. 내가 잘났다는 것은 전혀 아니니 오해 마시라. 그런데, 나만의 기준에 맞는 이성이 아니라면 여자로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타입이지만 술을 마실 때에는 이성이 아름답게 보이거나 전에는 별로라 여겼던 처자가 갑자기 눈에 확 꽂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솔직하게 이야기 해보자면 순수하게 남자로서의 본능만이 남는 기분이랄까?
지난 밤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도 현실에 돌아와 생각해보면 욕구의 분출이 아니었나 싶다. 너무 짐승 같다고 생각하지는 말아 달라. 왜,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남자 주인공이 정성들여 준비한 테이블과 조명으로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와인이 두잔 따라져 있다. 그러나 끝내 남녀는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의 몸을 포개러 자리를 떠날 뿐!!
모든 양조회사들과 주류 관련 종사자들은 김동률에게 감사패라도 전해야 한다. 내가 지난 밤, 술기운에 마주 앉은 여자에게 느꼈던, 또 매일 밤 그녀를 갖기 위해 술을 권하는 대한민국 남성들의 감정을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해 주었나.
물론 당신과 함께 술을 마시는 그 남자가, 나의 모습처럼 술을 마시며 남자로서의 본능만을 들이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자들의 속내가 시커먼지, 깨끗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마주 앉은 당신들 각자의 몫이다.
그날 밤 나와 마주앉아 즐겁게 술을 마셔준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이, 진실 되지 못했음에 대한 나의 죄책감을 이렇게라도 덜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들아, 당신이 그녀에게 술을 권하는 의도를 여자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여자들의 육감이라는 것은 실로 놀라운 것이니까. 내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돌을 던져도 좋다. 대신 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