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56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소품집.jpg

?

?일부러 30분 늦게 도착했음에도 또 다른 30분을 뜨게 만드는 단골지각생 친구 녀석. 나는 왜 이 녀석의 친구이며, 이 녀석은 왜 나의 친구인가를 생각하다 내 업보요- 그저 종로거리를 걷는다. 발이 닿는 곳으로 가고 가다 발견한 중고서점 하나. 마치 소원을 들어줄 것 같은 간판에 입구로 발을 디뎠다. 빌 만한 소원을 갖고 사는 지도 모르겠지만.

서점, 의외로 사람이 많다. 모두 나처럼 지각 쟁이 친구라도 한 명씩 둔 걸까. 아니면 시간을 내서 책을 찾을 만큼 여유로운 걸까. 서점 방문이란 게 여유가 전제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참 여유로워 보였다. 그래서 순간 여유로운 삶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닌지 시샘 했는지도.

?

?각자의 한 켠을 차지한 채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 움직임 없는 끄덕임만이 가득하다. 이상한 나라를 방문한 듯 나만 어색하게 동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무작정 책 한 권을 짚어들었다.

몇 년 전만해도 서점에 올라치면 ‘20대야 아파라, 더 아파야 하느니라, 여자들이여 현명하게 사랑하려무나.’ 등 각 종 각성제들을 염탐하곤 했는데, 이제는 암묵적 약속인 마냥 소설책이 즐비한 곳으로 향한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만이라도 현실을 잊고 싶어서랄까. 딱히 괴로운 현실이랄 것도 없는데도 고개를 들이미는 도피근성이다.

?

?책의 앞뒤를 살피기를 두어 차례. 그러다 스윽- 책장을 넘겨보는데, 어라? 까만 밑줄이 군 데 군 데 보였다. 이런 무지몽매한 사람을 보았나. 버젓이 하얀 종이 사이로 3.8선이 그어져있다. 중고서점에 내놓으면서 밑줄 친 것은 무슨 베짱이며, 여기 직원들은 이런 책을 그냥 받았나? 엄연히 따지면 낙서이다. 애초에 작가의 의도대로 인쇄된 검정 잉크가 아니니까.

그런데 요상하다. 그저 한 번 넘겨보고 마려던 내 손을 밑 줄 쳐진 구절 하나하나가 붙잡는다. 읽게 된다. 읽고 있다. 애석한 마음에서였을까, 애틋한 마음에서였을까. 이 사람은 왜 이 곳에 밑줄을 친 거지? 함부로 비집고 들어오는 밑줄이 불친절함에서 호기심으로 바뀌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른 채 그 사람의 감성을 찾아나가고 있었다. 30분 더하기 30분 늦은 친구의 전화는 무시 한 채.

?

?좋았다.?

?

?홀로 들어와 혼자의 시간을 보내다 가는 곳이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책이 들려주는 소곤소곤 이야기를 소재로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과의 밀회를 가지고 있었다. 이름 석 자 모르는 이와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고 있었고, 점차 그 사람의 온기도 담겨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문득 나의 외로움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지난 주 버스에서 스친 옆 사람의 어깨처럼 당혹스러움이 기쁨, 외로움으로 변할 때가 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에서 기뻐하는 것이 내색하지 않던 기특한 나의 외로움을 마주하는 일이 된다.

?

서점을 나섰다. 나서기 전엔 고민을 했다. 이 책을 살까, 말까. 나는 밑줄 친 책을 사지 않았다. 모든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책 중에서 가치 없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안 샀다는 건 내 흥미를 끌지 못해서? 평소 책을 구매하는 요인이 그것이라면 외려 사는 게 맞았다. 그런데, 흥미가 끌어당기는 힘보다도 그 책이 그곳에 있어야하는 이유가 더 컸다.

?혹시 31분 지각하는 친구 탓에, 행인이 빽빽한 거리를 비집고 누군가가 이곳을 오게 될지도 모르니까. 2가 이 아이를 마주했으면 했다. 나는 이 정도의 감사함으로 재충전이 충분했다. 이럴 때보면 나, 참 특이하게 살고 싶어 발악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정석을 피해 갓길로 가려고하는 것, 이것도 관심종자의 한 행동이겠지. 그래도 산물은 있었다. 밑줄 친 책 대신 밑줄 없는 책 한 권을 구매했다. 이유는.

?

.

.

.

?소품집.jpg


  1. 목요일 조용찬 주관 : 고전게임 다시보기 - 포가튼사가

    - 1997년 발매된 손노리의 SRPG 게임. 손노리는 포가튼사가 이전에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이하 '어스토')와 다크사이드 스토리를, 이후에는 화이트데이를 발매한 국내 굴지의 게임회사로, 나머지 게임들은 몰라도 '화이트데이'라고 하면 다들 알듯하다. - 80...
    Date2015.06.05 ByJYC Views1746
    Read More
  2. 편집장주관 - 고전게임 다시보기 '대항해시대2'

    바다를 지배한 그들의 서사시 '대항해시대2' - 지금이야 나관중 없었으면 미래가 불투명했을 정도로 '삼국지', '진 삼국무쌍' 시리즈를 우려 먹는 코에이지만(정확히는 코에이 테크모) 한때 에어매니지먼트, 대항해시대로 대륙을 넘...
    Date2015.07.01 By호솜 Views1740
    Read More
  3. [한귀에반한] 7화: 꿈과 기만이 방치하는 곳에서, 용기. (옐로우 몬스터즈 - 4월 16일)

    [한귀에반한] 7화: 꿈과 기만이 방치하는 곳에서, 용기. (옐로우 몬스터즈 - 4월 16일) "아직 우린 늦지 않았어. 언제나 맨 뒤에서 가고 있는 건 우리가 원했었던 거잖아." ? ? 졸업을 하고 백수가 된지 2주가 되었습니다. 한량기의 종말이 도래하고 있는 것...
    Date2014.03.05 By두괴즐 Views1716
    Read More
  4. [Floyd의 음악이야기] [News] 2014년 여름 락페스티발 정보 모음

    2014 Rock Festival 특집 New's & Gel 2013년 락페스티발의 열기는 대단했다. 5대 락페스티발은 물론 30여 개에 달하는 각 페스티발의 경쟁 속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얻었던 이는 바로 관객이었다. 여러 변수가 존재하는 2014년의 페스티발은 2013년의 향...
    Date2014.07.01 By냉동보관 Views1699
    Read More
  5. 목요일 고전게임 다시보기 : 메가맨(록맨) X1 (2)

    ? - 국내에선 기존 록맨 시리즈가 아닌 X1으로 록맨을 처음 접한 유저가 많아서, 기존 록맨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흔하다. ? - 록맨 시리즈의 후속이지만 X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어둡고 찜찜하다. 단순히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내용의 기존 시리...
    Date2015.07.11 ByJYC Views1688
    Read More
  6. [눈시칼럼] 유감동 스캔들

    세종 9년(1427), 사헌부에 음부(淫婦) 하나를 붙잡혀온다. 세종은 그가 누구며 무슨 짓을 저질렀으며 원래 남편은 누군지, 같이 논 남자는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간부(奸夫)는 이승·황치신·전수생·김여달·이돈 등과 같은 사람이고, 기타의 몰래 간통한 사람...
    Date2014.05.26 By호솜 Views1684
    Read More
  7. 01.[소품집] 어머니의 최근 검색어

    ? ? ? ? 여자 하나 있다. 이 곳 저 곳에서 관심 받지 못하는 여자 하나 있다. 달님이 잠 못 이루는 이들을 달래기도 전에 하루를 시작하고, 쪽잠을 뒤척인 듯 깊게 패인 두 눈으로 거울을 바라보는 여자. 표정 하나 담기지 않는다. 몇 걸음 옮겨 부엌이라고 ...
    Date2014.07.30 By호솜 Views1681
    Read More
  8. [눈시칼럼] 만보산 사건 - 외국인 노동자와의 갈등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서는 중국인 왕서방이 악역으로 나온다. 일제강점기라는 배경을 생각하면 일본인이 아닌 중국인이라는 게 특이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있어 중국인 역시 그리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기 때문...
    Date2014.11.16 By호솜 Views1674
    Read More
  9. [까만자전거]Morrison Hotel

    ?<모리슨 호텔로 초대합니다> 까만자전거 ?누군가 내게 다가와 어떤 밴드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잠시 <킹 크림슨(King Crimson)>과 <도어스>를 두고 머리 속에서 살짝 저울질을 해보다가 결국에는 도어스라고 대답하게 될 것이다. 물론 좀더 오래 전에 내...
    Date2014.03.19 By유대리 Views1655
    Read More
  10. 수요일 만화를 보는 소년 - 사랑의 천사 웨딩 피치

    마법 소녀 물은 요새 유행하는 히어로 물이랑 흡사한데 소녀들이 주인공인 장르다. 남들이 로봇 물 볼 때 혼자 마법소녀 물을 보던 나의 은밀한 취미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캐치 유~ 캐치 유~ 캐치 미~ 캐치 미~” 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카드캡터 체리 O...
    Date2015.05.20 By호솜 Views1627
    Read More
  11. 눈시칼럼 - 훈민정음, 한글이 되다.

    19세기 말, 조선의 주요 과제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전근대의 중화세계관에서 벗어나 근대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였다. 중국 대신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일본의 의도가 끼어있었던 점이 아쉬운 점이지만, 독립의 당위성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Date2014.10.01 By호솜 Views1627
    Read More
  12. 금요일 홍슐랭가이드 - 탄탄면공방

    ? ? ? ? "홍, 여기는 맛있는 데 없어?"?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회의를 마친 뒤 점심 메뉴를 안내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뭐 별다를 것 없이 맛있는 집을 추천할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오기가 생겼다. 새로운 맛집을 선 보이고 말겠다는 오기. ?상수와 합...
    Date2015.07.11 ByJYC Views1579
    Read More
  13. 눈시칼럼 - [김유신 - 그가 사는 방식]

    532년, 금관가야가 멸망한다. 신라는 항복한 금관가야의 왕 구형왕을 진골에 편입시켰고, 왕족들은 신라의 귀족으로 새출발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우가 같을 리는 없었다. 이들을 ‘신김씨’라 부르며 기존의 진골들과 구별한 것이다. 구형왕의 손자인 김서현은...
    Date2014.09.01 By호솜 Views1568
    Read More
  14. [월요일은 편집장입니다] 메탈리카와 마리안느 페이스풀

    메탈리카의 'The memory remains' 중반 그리고 후반부에는 기괴하다고 해야할까 좀 특이한 코러스가 흘러 나온다. 중반부에서는 '랄랄라~'허밍. 후반부는 'say yes... at least say hello'라는 말을 동시에 읊조리기도 하는데 남자라 하기도 여자라하기도 애...
    Date2014.12.24 By호솜 Views1566
    Read More
  15. 01.[소품집] 밑줄 친 책

    ? ?일부러 30분 늦게 도착했음에도 또 다른 30분을 뜨게 만드는 단골지각생 친구 녀석. 나는 왜 이 녀석의 친구이며, 이 녀석은 왜 나의 친구인가를 생각하다 내 업보요- 그저 종로거리를 걷는다. 발이 닿는 곳으로 가고 가다 발견한 중고서점 하나. 마치 소...
    Date2014.07.01 By호솜 Views1561
    Read More
  16. [한 귀에 반한] 8화: 구직 주저기 (브로콜리 너마저 - 졸업)

    [한 귀에 반한] 8화: 구직 주저기 (브로콜리 너마저 - 졸업) ?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메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겨울의 미련이 봄의 도래를 훼방하던 올해 초, 저도 졸업(...
    Date2014.04.03 By두괴즐 Views1548
    Read More
  17. 인디게임 추천선, 슬렌더맨(Slender : The Eight Pages)

    ? ? ? ?인디게임에 대해 아시는지. ?홍대씬으로 대표되는 인디음악, 독립영화로 인해 인디문화의 존재, 그리고 '인디'의 정의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일반인들에게 아직까지도 생소한 인디문화가 있으니. '인디게임'이다. ? ?과거의 인디게임은, '인디문...
    Date2016.04.20 ByJYC Views1507
    Read More
  18. 02.[소품집] 국수

    Date2014.03.13 By호솜 Views1497
    Read More
  19. 홍슐랭 가이드 - 피맛골 3대장

    홍슐랭이 보여주는 피맛골 3대장 A.K.A 홍슐랭의 3대천왕 나도야 한 번 찍어보자 수요일마다 모여 고품격 음식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사람들부터 전국의 맛집(?)이 아닌 음식점들까지 모두 찍을 기세로 투어 중이신 백주부님까지. 너도나도 음식점들을 줄 세우...
    Date2016.04.21 By홍홍 Views1474
    Read More
  20. [까만자전거] Melanie

    <감성충만을 돕는 음악 사용 설명서 1 (Saddest Thing)> 까만자전거 http://wivern.tistory.com/1488 ?지난주 일요일 친구 하나가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며 별빛촌(영천) 복숭아와 포도 한상자씩을 내려 주고 갔다. 수돗물로 복숭아와 포도를 깨끗이 씻다 보니...
    Date2014.09.04 ByJYC Views145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 7 Next
/ 7

로그인 정보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