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자전거] 완벽한 심포닉 록을 향한 첫 걸음 Yes - Time And A Word

by JYC posted Apr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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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심포닉 록을 향한 첫 걸음 Yes - Time And A Word
 
까만자전거
 
 
 킹 크림슨(King Crimson),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등과 함께 록 팬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영국의 수퍼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는 영국 런던에서 '존 앤더슨(본명: John Roy Anderson)'과 '크리스 스콰이어'에 의해서 결성되었다. 존 앤더슨은 영국 아크링턴의 농촌 마을에서 아일랜드계 부모인 앨버트 앤더슨(Albert Anderson)과 캐서린 앤더슨(Kathleen Anderson)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인트 존스 초등학교(St. John's Infants School) 재학 시기에는 직접 만든 워시보드(Washboard: 금속 빨래판을 손톱으로 튀기는 악기)를 들고 '리틀 존스 스키플 그룹(Little John's Skiffle Group)'을 결성하여 로니 도내건(Lonnie Donegan) 같은 포크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따라하며 밴드 활동에 열정을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 의해 열다섯이 되던 해에 학교를 자퇴하고 생업 전선에 나서게 되는데 이 당시 존 앤더슨은 농장의 일꾼, 트럭 운전사, 우유 배달 등의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게 된다.
 
 
 이런 고된 일상과 조용하고 답답한 고향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존 앤더슨은 '아크링턴 스탠리 클럽(Accrington Stanley F.C.)'의 축구 선수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쫓게 되지만 빈약한 체격 조건으로 인해 입단이 거절 되어 축구 선수로써의 성공은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으로 남고 말았다.
 
 
 1962년의 어느 날, 존 앤더슨은 항구 도시 리버풀의 한 클럽을 지나치다 밴드 공연을 보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과 클럽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을 접하게 되자 불현듯 밴드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형인 '토니 앤더슨(Tony Anderson)'이 리드 보컬로 활동하고 있던 밴드 '워리어스(The Warriors)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워리어스에서의 활동은 밴드 경험을 쌓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정도로 성공과는 거리가 먼 활동이기도 했다.
 
 
 존 앤더슨은 1967년에 밴드를 탈퇴하여 솔로로 두장의 싱글을 발표하는 한편 '더 건(The Gun)'과 '오픈 마인드(The Open Mind)'라는 이름의 밴드에서 노래를 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1968년 3월, 존 앤더슨은 '피터 뱅크스'와 ?'크리스 스콰이어'가 활동하고 있던 사이키델릭 그룹 '메이벌 그리어스 토이샵(Mabel Greer's Toyshop)'의 리드 보컬을 맡아줄 것을 크리스 스콰이어로 부터 제의 받고 밴드에 가입하여 메이벌 그리어스 토이샵의 리드 보컬을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그해 여름이 지나가기도 전에 밴드를 탈퇴한 존 앤더슨은 크리스 스콰이어, 피터 뱅크스, 빌 브루포드, 토니 케이와 함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를 출범시키게 된다.
 
 
 존 앤더슨과 함께 예스의 탄생에 커다란 기여를 했던 크리스 스콰이어는 택시 운전을 하던 아버지와 가정 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크리스 스콰이어는 성 앤드류(St Andrew) 교회의 성가대 활동을 통해서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지만 자신이 밴드 활동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십대 시절 '비틀즈(The Beatles)'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는 '폴 맥카트니(Paul McCartney)'를 알게된 후 그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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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발적인 비틀즈 열풍에 동화된 크리스 스콰이어는 베이스 기타를 들게 되었고 '셀프스(The Selfs)'라는 이름의 밴드에 가입하여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크리스 스콰이어가 활동하고 있던 셀프스는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밴드인 '신(The Syn)'과 통합하여 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이 밴드에서 크리스 스콰이어는 피터 뱅크스를 처음 만나게 된다.
 
 
 사이키델릭 음악을 추구했던 신은 1967년 까지 활동하다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해산하였으며 크리스 스콰이어는 피터 뱅크스와 함께 신의 해산후 메이벌 그리어스 토이샵에 가입하여 밴드 활동을 이어 가게 된다. 하지만 메이벌 그리어스 토이샵 역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밴드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메이벌 그리어스 토이샵에서 활동하던 크리스 스콰이어가 지역의 한 클럽에서 존 앤더슨을 만나면서 밴드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출발점에 서게 된다.
 
 
 수의사를 아버지로 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빌 브루포드'는 열세살때 텔레비전에서 미국인 재즈 드러머가 연주하는 모습을 본 후에 드럼이라는 악기에 눈을 뜨게 된다. 중,고교를 거치며 드럼 연주에 빠져들게 된 빌 브루포드는 열일곱살 때 '브리드(The Breed)'라는 밴드에 가입하여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68년에 영국의 블루스 밴드인 '사보이 브라운(Savoy Brown)'의 순회 공연에 참가하기도 하였던 빌 브루포드는 사보이 브라운의 이탈리아 순회 공연이 끝나자 런던으로 돌아와 신문에 밴드의 가입을 원한다는 광고를 내게 된다.
 
 
 빌 브루포드가 낸 광고는 메이벌 그리어스 토이샵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밴드를 구상하며 멤버를 구하고 있던 존 앤더슨과 크리스 스콰이어에게 읽혀지게 되었고 마침내 빌 브루포드는 존 앤더슨과 크리스 스콰이어가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밴드의 드러머로 가입하게 된다.
 
 
 '토니 케이'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였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네살때 부터 클래식 피아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클래식 음악 학교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클래식 교육을 받기 시작한 토니 케이가 처음 대중들 앞에서 연주한 것은 그의 나이 열두살 때 였다.?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던 토니 케이는 재즈 음악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열다섯살이던 1961년에 '대니 로저스 오케스트라(Danny Rogers Orchestra)'라는 이름의 재즈 밴드에 가입하여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몇군데의 록 밴드를 거치며 음악 활동을 하던 토니 케이는 1968년에 자신이 자주 드나들던 클럽에서 크리스 스콰이어를 만나 그의 권유로 예스에 합류하게 된다.
 
 
 아버지로 부터 선물받은 어쿠스틱 기타로 인해 기타 주자의 길을 걷게 된 '피터 뱅크스'는 록 밴드인 신에서 크리스 스콰이어를 만나게 된다. 신의 해산 후 잠시 헤어졌던 두 사람은 존 앤더슨과 새로운 밴드를 구상하고 있던 크리스 스콰이어의 요청에 의해 예스에 합류하면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렇게 해서 5인조 밴드가 예스가 1968년에 출범하게 되었으며 1968년 8월 4일에 청소년 캠프의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첫 선을 보이게 된다. 비교적 순탄한 데뷔 무대를 가진 예스는 클럽 출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로얄 알버트 홀(The Royal Albert Hall)에서 진행된 영국의 수퍼 하드 록 밴드 '크림(Cream)'의 고별 공연 무대에서 오프닝 무대를 맡기도 하였다.
 
 
 크림의 고별 공연에서 좋은 평을 얻게 된 예스는 마키 클럽(The Marquee Club) 출연으로 자신들의 활동 폭을 넓히게 된다. 클럽 활동 등으로 지명도를 넓혀가던 예스는 마침내 애틀랜틱 음반사(Atlantic Records)와 음반 계약에 성공하고 1969년 7월 25일에 데뷔 음반 'Yes'를 공개하게 된다. 영국반과 미국반의 두가지 표지로 발매되었으며 비평가들의 호평을 이끌어 낸 예스의 데뷔 음반은 비틀즈의 곡을 커버한 'Every Little Thing'과 '버즈(The Byrds)'의 'I See You'를 커버한 곡을 포함하여 예스의 자작곡들로 구성이 되었다.
 
 
 예스는 데뷔 음반을 통해 록과 프로그레시브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음악을 들려 주고 있는데 아직은 설익은듯한 느낌의 음반이기도 하다. 데뷔 음반 발표 후 예스는 1970년 7월 24일에 두번째 음반 'Time And A Word'를 발표하게 된다. 예스의 두번째 음반은 예스 음악의 특징인 웅장함이 시작되는 음반인 동시에 예스가 본격적으로 프로그레시브 록을 시도하기 시작하는 음반으로 첫번째 음반과 마찬가지로 영국반과 미국반의 표지가 서로 다르게 발매가 되었다.
 
 
 예스는 두번째 음반에서 처음으로 현악 연주를 도입하여 프로그레시브 적인 시도를 시작하고 있으나 이 때문에 피터 뱅크스의 역할이 데뷔 음반에 비해 줄어 들기도 하였다. 결국 이러한 일이 계기가 되어 피터 뱅크스는 이 음반을 끝으로 예스에서 탈퇴를 하게 되고 '스티브 하우(Steve Howe)'가 가입하여 예스의 새 역사를 쓰게 된다.
 
 
 예스의 두번째 음반 'Time And A Word'에는 데뷔 음반과 마찬가지로 두 곡의 커버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미국의 록 밴드 '버팔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eld)'의 'Everydays'와 미국의 포크 가수 '리치 헤이븐스(Richie Havens)'의 'No Opportunity Necessary, No Experience Needed'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 두곡 가운데 'Everydays'는 예스의 초기 명곡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곡으로 듣는 이에 따라서는 곡의 중간 부분이 혼란스럽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효과이다.
 
 
 'Everydays'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는 몽롱한 분위기의 곡 'Sweet Dreams'와 간결한 구성의 타이틀 곡 'Time And A Word'등이 수록된 예스의 두번째 음반은 예스가 어떻게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완성되어 갔는지를 알려주는 음반이기도 하다. 참고로 예스의 두번째 음반 'Time And A Word'의 미국 발매반의 표지에는 멤버들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으며 영국 발매반의 표지에는 여성의 나신이 인쇄되어 있다.
 
 
 
좋은 만남, 좋은 음악 Art Rock (http://wiver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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