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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아티스트

-  메이트 그리고 '임헌일' -

 

 

글 : 조용찬(lifeinagony@onair168.com)

편집 : 이혜원(hyou78@onair168.com)

 

 

진짜 해체한거야?’ ‘그렇다던데’ ‘? 아니라던데’···.

20115, 영화 ‘Play’O.S.T를 마지막으로 메이트가 활동을 중단한지 2년이 흘렀다. 모두의 머릿속에서 메이트가 [해체][활동중단]2지선다에 머무르고 있을 때, 임헌일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1[사랑이 되어가길]을 발표했다.

 

최근 근황은 어땠는지.

바쁜 일정들이 다 끝나서 가끔 있는 방송활동 등을 소화하고 있고 9월 둘째 주부터 지방공연이 있어서 공연 준비를 하며 지낸다.

 

이전에 브레멘’, ‘메이트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지만 본인 이름을 내세운 앨범은 처음이다. 부담감은 없었는지.

부담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이런저런 활동들을 하면서 다양한 음악적 접근 시도를 했는데, 너무 다양하다보니까 스스로나 팬들이나 내가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 헷갈렸다. 그래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음악,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에서 자신있는 것들을 뽑아서, 이번 앨범을 통해 한번 쯤 정리를 하고 넘어가고자 했다. 앨범을 만들면서 어떤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줄지, 그리고 내가 만든 음악이 어떻게 각인될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관심거리였다. 사실, 밴드음악이 100퍼센트 내 자신의 음악이라고 하긴 힘든데, 이번 앨범은 내 자아가 100퍼센트 투영된 앨범이기 때문에 부담, 두려움, 호기심이 공존했다.

 

해체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다. 해명을 여러 번 했던 것으로 아는데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아무래도 공백기가 길어지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없으면 해체했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테니까. 처음엔 화도 났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메이트의 컴백을 기다려주고 있구나하고 좋게 받아들였다.

 

정준일씨가 10월 달에 전역하면 메이트 멤버들이 모두 모이게 되는건데, 이후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 했는지.

계속 변하고 있다. 틈날 때마다 면회도 가고 이야기도 주고 받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돌아오자마자 앨범을 내자는 이야기도 있었고... 준일이가 워낙 변덕이 심한친구라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 자기 앨범을 한 장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의 입대는 언제일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상황이 정리되면 메이트 앨범을 하지 않을까 싶다. 준일이나 현재나 메이트를 하기 전부터 워낙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런 것들을 막고서 메이트를 하는 것이 팀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기에, 최고의 시너지가 모일 수 있는 타이밍이 올 때 메이트 활동을 하게 될 듯하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음악에 탁월한 재능이나 감이 있진 않았고,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자라면서 형들이 연주하는 것을 부러워하곤 했다. 내가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고, 단지 악기를 배우려는 욕심에 시작했다. 처음엔 줄도 4개 밖에 안되고 쉬워보여서 베이스를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드럼도 배웠고, 마지막으로 기타를 접하게 되었다. 그중에선 기타가 제일 매력적이고, ‘남자의 악기라는 느낌이 들어서 멋있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중고등학교 때도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세상에서 이렇게 재밌는 걸 만나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진지하게 배우기 시작했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은 없었지만 이런 것들을 꾸준히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고, 내 생각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말씀드린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 결과 서울예대에 진학하게 되면서 계속 음악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반대하지는 않았는지

반대하셨다. 기타 배운다고 한 것도 별로 좋아하진 않으셨다. 어린 마음에 내 스스로가 기특한 것은,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집안 형편이 좋지도 않아서 공부하는 학원을 다니면서 동시에 기타를 배울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던 지라, 기타를 배우기 위해선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만큼, 선택한 것에 최선을 다해서 부모님께 꼭 좋은 결과를 안겨드려야겠다는 일종의 두려움과 책임감이 생겼다. 어린 나이였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림으로써 부모님의 신뢰를 받았던 것 같다. 학교도 별 무리없이 간 편이고, 오히려 나중엔 이런저런 일이 생길 땐 부모님의 응원과 격려를 받게 되었다.

 

부모님들이 음악하는 걸 안좋아하시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안좋아하신다. 지금은 부모님 의견에 100% 동의하는 편이다. 그때는 현실을 몰랐기 때문에 막연하게 도전할 수 있었다. 어린 아이들의 가장 큰 힘은, 순수하면서 세상물정을 모르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음악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 시도도 못했을 것이다. 그때의 천진난만함과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부모님 입장은 더했을 것이다.

 

이력 중에 1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동상 수상 경력이 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그렇게 대단한 대회인줄 모르고 출전했다. 유재하 선배님의 음악은 좋아했지만 그 이름을 딴 음악대회가 있는지는 학교 들어가서 알았다. 학교에 들어가니까 지금은 폐지됬지만 대학가요제에 나가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유재하 음악대회에 나가려고 하는 친구도 많았다. 자작곡으로 노래를 직접 해야 했는데, 그전까진 곡을 많이 쓰지 않았고 쓰더라도 연주곡을 주로 쓰는데다가 노래마저 직접 해보질 않았는데도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갑작스레 들었다. 마침 만들어놨던 곡이 있어서 출품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웃음). 지금 내가 심사위원이 돼서 그 당시의 나를 보면, 과연 내가 상을 줬을까 싶은데, 아무래도 그 당시에만 가질 수 있던 순수함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음악적 스케일로서의 뛰어남이나 탁월함보다는, 유재하 선배님이 하셨던 음악이 순수함과 낭만을 한국적 정서로 아름답게 표현했던 것인 만큼, 나의 음악에도 그런 것들이 조금이나마 투영되 보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그런 음악을 만들라고 하면 못만들 것 같은데, 작법이나 노래나 굉장히 서툴렀다. 그런 군더더기 없는 순수한 정서를 좋게 봐주신 듯 하다.

 

겸손하시다.

진짜 장난이 아니었다(웃음). 지금도 못듣겠다. 그 회차에서만 음원으로 앨범을 만들었는데, 그 이후엔 또 음원을 안만들었다. 어쨌든 15회만 운이 좋게, 혹은 안타깝게도 음원을 만들었는데, 그걸 들을 때마다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지금 웹상에 음원이 남아있나.

너의 기억이라는 곡이다. 지금도 정말 부끄러운데, 이번 공연 혹은 연말 공연 때 쯤 다시 한 번 잘 불러볼까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꽤 괜찮아졌다. 그 나름대로의 기억이니만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당시엔 정말 부끄러워서 못들을 정도였다.

 

임헌일씨는 팔색조같다는 생각이 든다. 악기도 전부 다룰 수 있고, 작사, 작곡에도 능하시고, 세션맨, 밴드활동을 거쳐서 솔로앨범까지 냈다. 본인을 소개할 때 쓰였으면 하는 수식어가 있는지.

그런 것은 사실 별로 없지만... 듣고 가장 기분이 좋았던 말은, 누군가 트위터에 유재하가 살아서 락 음악을 했다면 이런 음악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썼던 것이었다. 너무 과분하고 좋은 칭찬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순간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했다. 90년 대에 봐왔던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멜로디와 코드웍, 가요의 작법,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왔던 팝 음악의 락적인 색채들을 적절히 믹스해서 표현하고자 한 것이 내 음악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러한 것들을 대표하는 것이 유재하 선배님의 음악이기에, 아주 근사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좀 길어졌는데, 어쨌든 나를 표현하는 수식어로는, ‘진솔한 음악을 하는 사람정도로 정리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평소에 어떤 음악을 듣나.

운동을 하면서 이런저런 음악들을 많이 듣는데,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는다. 조예가 깊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특유의 정취를 좋아하는 편이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그 멜로디가 좋을 수도 있고, 목소리가 좋아서일 수도 있고, 악기 연주가 좋아서 일 수도 있는데, 멜로디와 관계없이 그 분위기가 주는 정취가 좋아서 듣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클래식도 많이 듣고,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노래도 많이 듣는데, 엊그제 발표된 ‘GD’의 음악도 들었고, ‘카라의 음악도 들었다. 사실 장르를 안가리고 전부 찾아 듣는다. 아무래도 가을이 되니까 잔잔하고 감동적인 음악들을 듣게 되는 것은 있다. ‘팻 매스니음악도 굉장히 좋아하고. 새로운 음악들을 다 좋아하고 듣긴 하지만, 빼놓지 않고 듣게 되는 음악은 있다. ‘팻 매스니가 그런 음악이고.

 

앨범관련 질문으로 넘어가면, 지난 6월에 1<사랑이 되어가길>을 발표했다. 앨범 소개를 부탁드리자면.

내가 하는 음악, 좋아하는 음악, 동경하는 음악을 정리한 앨범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나를 최대한 잘 표현할 수 있는 가삿말을 담아서 표현한 앨범이다. 메이트 때 해보려고 했던 음악도 있고, 브레멘 때 담으려고 했던 음악도 있다. 오랜 시간 써왔던 음악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음악, 그리고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 9곡을 추렸다. 지금의 나, 예전의 나, 그리고 앞으로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한 번에 보여주고 싶었다. 1집 앨범이기 때문에 더 신중했고, 그래서 더 산만한 느낌은 있지만 어느 하나라도 구성에서 빠지면 아쉬웠을 듯 하다. 산만하지만 그게 지금의 나고,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고, 그동안 내가 지나왔던 길이기에 이것을 잘 정리해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사로 들어가보면, 20대를 거쳐오며 느꼈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 꿈과 좌절, 슬픔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나의 내면적인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앨범제목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

이제는 30대를 지나쳤기에 너무 구구절절하게 표현하기보다 조금은 관조하는 시점으로, 너무 그 안에서 집착하기 보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 땐 그랬구나. 앞으로는 이렇게 됬으면 좋겠다라는 의미에서 사랑이 되어가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지금 들어도 크게 후회되지 않는 앨범을 만든 것 같다. 앨범을 만들 때, 당장 히트시킬 자신은 없었다. 그런 자신은 앞으로도 없고, 10년 뒤에 다시 앨범을 꺼내 들었을 때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앨범은 늘 그랬던 것 같다. 김동률씨, 이적씨, 이소라씨의 앨범들처럼,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좋은 리듬을 주는 앨범들이 있다. 크게 성공하진 못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꺼내듣고 싶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고, 이번 앨범이 나에겐 그런 앨범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굉장히 많은 아티스트들이 앨범작업에 참여를 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 신윤철씨, 김광민 교수님, 밴드 ‘Sting’ 출신의 라일 워크만 등...

김광민 교수님 음악을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좋아했다. 마지막 트랙 <은혜>는 피아노 곡으로만 표현을 하고 싶었던 곡이었다. 김광민 교수님의 앨범 <보내지 못한 편지>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이 앨범의 찬송가를 클래식하면서 재지(Jazzy)하게 풀어낸 정서들을 특히 좋아했다. 우리 대표님과도 친구분이시다. 어렸을 때부터 종종 인사드리곤 했는데, 본격적으로 작업을 함께 한 것은 처음이었다. 녹음을 하실 때 굉장히 열심히 해주셔서 놀랐다. 그정도 경력이 되시면 한, 두 번 연주한 후 그 중에서 고르라고 했어도 나에겐 굉장히 영광인데, 섬세하게 하나하나 연주를 하시면서 본인이 마음에 들 때까지 녹음을 해주셔서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김덕수 선배님은 국악, 양악을 가리지 않고 음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굉장한 분이다. ‘키스 자렛’, ‘허비 행콕등과 작업을 하셨던 분인 만큼 세계에서 따져도 비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축제의 날>에서 퍼커시브한 파트를 필요로하던 중 연락드리게 되었는데, 퍼커션 파트에 처음엔 아프리칸 리듬을 쓰려고 했으나 너무 뻔하게 느껴졌다. 음악이 유니크해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던 중 사물놀이를 떠올렸고, 그 다음에 바로 김덕수 선배님께 연락을 드렸다. 또 다시 대표님과의 친분이 작용하긴 했지만(웃음). 어쨌든 음악을 듣고 너무 흔쾌히 승낙해주셨는데, 락 음악과 협연을 많이 해보셨던 분이고, 굉장히 열린 분이셔서 굉장히 재밌게 했다. 공연 때는 김덕수 선배님은 참여를 못하셨지만 제자분들과, 같이하는 팀원분들이 참여를 해주셔서 관객들이 뒤집어지다시피 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나도 국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나누자 정말 엄청났다.

 

신윤철씨도 특별한 인연이 있으셨다고 들었다.

기타리스트 신윤철씨는 내 롤 모델이다. 기타연주자로써도 굉장히 훌륭하고, 기타연주자를 떠나서 작곡, 작사, 편곡 역시 굉장히 훌륭하다. 서울전자음악단도 좋아했고, 신윤철 선배님 솔로앨범도 다 듣고 너무 좋아했다. 어렸을 때 레슨해주시는 선생님의 연습실에 신윤철 선배님이 계셔서 옆에서 훔쳐보면서 동경해왔는데, 그 분이 가지신 가사를 쓰는 순수한 방식이라든지, 비틀즈나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을 받은 몽롱한 밴드 사운드라든지, 이런 것들을 너무 좋아했기에, 사실은 함께 작업을 하고 싶어서 곡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극>이라는 곡이 신윤철 선배님에 대한 트리뷰트성 곡인데, 오른쪽에 나오는 기타가 내가 친 기타고, 왼쪽에 나오는 기타가 신윤철 선배님 기타이다. 그 곡에선 신윤철 선배님처럼 기타를 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작업을 할 때, 선배님이 어떻게 연주를 하는지 보고 싶었는데, 마침내 그게 전부 손에서 나오는 것이란 것을 확인을 했더니 알곤 있었지만 굉장히 허무했다.(웃음) 내가 쓰는 앰프에 본인이 쓰는 간단한 이펙터 몇 개를 쓰니까 그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자기 소리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앨범 작업을 하는 순간들이 너무 재밌었다.

 

타이틀곡이 <설명하려하지 않겠어>라는 곡이다. 곡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리자면.

이 곡은 메이트 앨범에도 넣어보려고 했던 곡이다. 메이트 결성 전인 2008년 여름에 썼던 곡인데, 그래서 메이트와 가장 닮은 곡이 아닌가 싶다. 발라드 작법으로 만들어졌고, 락적인 색채를 가미했다. 가사는 풋풋한 사랑이야기이다. 좋아해도 표현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굉장히 못난 사람인데, 요즘 사랑이야기의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누구나가 안으로 삭히는 그런 이야기들인데.. 내가 좀 그런 사람인 것 같다(웃음). 내 캐릭터를 잘 표현해주기도 하고, 목소리를 잘 표현해주기도 해서 타이틀 곡으로 정했다.

 

경험적 측면이 많이 작용한건 아닌지.

너무 많다(웃음). 혼자 좋아하고 혼자 정리하고. 진짜 좋아하면 표현 잘 못하지 않나. ‘감히 내가 어떻게...’ 하면서 작아지기도 하는데, 내 음악 중엔 그런 류의 음악이 많은데, <Real>이라는 곡도 그랬다. 그게 좀 더 진실하다고 느끼기에 그런 것인데, ‘네가 좋아. 그러니까 잘해보자이런 식의 방법도 멋있지만, 저에게 있어선 진실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너무 좋아해서 다가서지 못하고 표현도 잘 못하고, 그런 것이 저에겐 진짜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앨범 수록곡 중에 종교적 색채가 비교적 강한 <은혜>라는 곡이 있다. 뮤지션, 아티스트, 기타 연예인들은 대중에게 공인으로 여겨지기에 이러한 종교적 소신의 발현에 제약이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여론에 대한 우려나 두려움은 없었는지.

그런 것은 없었다. 어쨌든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스스로 아티스트라고 생각을 하고, 예술을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하면 진실하게 투영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데, 어쨌든 나는 교회에서 음악을 시작했고, 내 세계관, 가치관 등이 종교를 떼어놓고선 이야기를 할 수 없기에, 내가 하는 음악은 모두 종교적 색채와 떨어뜨려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심지어 이번 앨범의 <>처럼 거친 단어를 사용하여 스스로를 질책하는 곡일지라도, 그런 가치관 안에서의 나의 어두운 부분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나는 철저한 종교가 있는 사람인데, 대중음악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감춰놓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마치 두 가지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아이러니가 생겼다. 아주 오래전의 예술작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의 작품에는 종교적인 내용이 표현되어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그러한 작품들만이 전달할 수 있는 감동이 있을 것이고, 그게 나를 표현하는 솔직한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에 그 같은 표현방법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로 인해, 내가 좀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있다. 앨범 곡으로 공개적으로 종교를 밝힌 셈인데, 종교가 있다고 해서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내 못난 부분들을 사람들이 알 수도 있다는 점에서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품으로써의 나의 진실된 마음을 표현하는 것까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이후에 사람들의 인식으로 인해 만들어질 후폭풍은 내가 뿌린 씨앗이니 잘 감당해야 할 듯 하다.

 

앨범의 분위기가 모던하면서 발라드같은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 <연극>처럼 정반대로 하드한 곡들도 있다. 이런 하드한 음악들이 임헌일씨 목소리와 잘 매치된다는 생각이 드는데 장르적으로 언젠가 꼭 시도해보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

블루스 음악을 많이 듣고, 몰두하고 있다. 기타리스트로써 더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20대 때 모던 락같은 감성적인 음악에 집중하면서 블루스에 대해선 등한시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쿨하지 못했다. 실용음악과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블루스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고, 블루스 식으로 풀어내는 음악들이 식상하다고 느껴졌던 적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일부러 서툴게 연주한 적도 있었고, 세련되게 표현하려고만 노력을 했다. 그래서 메이트에서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블루스 연주임에도, 그런 것들을 거의 연주하지 않았고, 깔끔한 아르페지오로만 연주를 하려고 했다. 더 세련되고 세련되게... 그러다가 요즘엔 블루스가 너무 좋아졌다.

 

선호하는 블루스 장르 아티스트가 있다면.

에릭 클랩튼의 음악이나, ‘존 메이어가 최근에 발표하는 앨범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클래시컬한 음악들에 관심이 가고, 흥미를 가지게 되어서, 지금은 그런 식으로 곡을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쉽지가 않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해온 것이 있기 때문에, 사실은 지금 굉장히 힘들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생각한 그림은 있지만 잘 표현이 되질 않아서 시국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블루스 음악을 우리 정서 안에서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이게 자칫하면 굉장히 올드해질 수 있어서... 존 메이어가 멋있는 것은 미국 안에서도 기성음악에 속하는 블루스 음악을 젊은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게끔 세련되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내 음악, 솔로앨범을 앞으로 꾸준하게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축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기타연주에 몰입하고 있고, 곡도 그렇게 쓰려고 노력 중이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한 우물을 파다보면 고전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무시할 수가 없다. 어렸을 땐 누구나 그렇게 얘기하니까 음악은 클래식이지라고 따라 말했지만, 고전이 주는 매력을 시간이 지날수록 아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다.

 

9월 달에 단독콘서트가 잡혀있다.

지방투어를 내 이름 걸고 처음으로 하는데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웃음). 이번 공연은 밴드 없이 혼자 하는데, 이런 공연들을 꼭 해보고 싶었다. ‘제프 버클리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제프 버클리가 옛날에 카페에서 앰프 하나 두고 노래했던 것을 특히 동경했다. 아까도 정취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을 드렸는데 혼자 공연하면 보통은 통기타를 하지만, 나는 밴드가 없기에 더 자유로울 수 있는 일렉기타를 보여줄 생각이다. 그 앨범에서 봤던 정취가 너무 매력적이라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연말 공연하기 전에 지방에서 공연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참이라, 작은 규모의 공연장에서 몇 안되는 관객들을 모셔놓고 이야기도 많이 하면서 공연을 하고자 한다. 원래 공연 때 말을 별로 안하는데, 이야기도 많이 하고 소통하는 공연을 해보고 싶었다.

 

임헌일씨에게 음악인으로써의 꿈이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어렸을 때 막연하게 가졌던 생각은 음악을 재밌게 오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앨범을 한 장씩 낼 때 마다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끼는데, 차라리 스타가 되는게 더 쉬울 것 같다. 사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가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 ‘음악 오래하고 싶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배철수씨가 그게 제일 어렵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본인도 오랫동안 음악을 하셨던 분이고 시간이 지나서 지금까지 음악하는 분들이 주위에 많이 없으니까 그렇게 이야기하신 듯하다.

아무래도 이번 앨범을 내고 다음 앨범을 내고 싶다’, 딱 여기까지인 것 같다. 좋은 곡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많이 불려지고 많이 기억되고 싶긴 하지만, 대신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앨범을 내서 발표했는데, 내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곡을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줘서, 그게 마치 나를 대표곡하는 곡으로 여겨질 수가 있다. 그래서 어떤 밴드들은 그런 노래를 안부르려고 하는 팀도 있다. 팬들은 듣고 싶어하지만,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 그런 상황은 원하지 않는다.

 

<Creep>이 그렇다.

비슷하다. ‘이 곡은 참 좋은 음악이다싶은 곡을 만들었는데, 사람들도 그 곡을 사랑해준다면 음악하는 사람으로써 가장 행복한 일일 것이다. 너무 만족스러운 곡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임헌일 그 노래 정말 좋다하는 곡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공연정보]

    

세부장르 - 락/메탈

일시 - 13/09/14 ~ 13/09/15(부산), 13/09/28(대구), 13/09/29(대전)

장소 - 해운대문화회관 해운홀(부산), 복합문화공간 인디야(대구), 인스카이2(대전)

관람등급 - 7세이상

관람시간 ?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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